제나라의 유세가였던 순우곤이 하루동안에 일곱명이나 되는 선비를
선왕에게 추천하자 왕이 물었다.

"천리에 한명의 선비만 얻어도 어깨가 부딪칠 만큼 많은 것이라고 했는데
그대는 하루에 일곱명의 선비를 추천했으니 이거 세상에 선비가 너무 많은
것 아닌가" 그라자 순우곤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유유상종이 아닙니까.

무릇 세상사물은 자기가 노는 물이 있는 법, 바로 저 같은 자가 현자들이
노는 물입니다.

그러나 왕이 선비를 제게서 구하는 것은 강가에서 물 긷는 것 같고
부싯돌에서 불 얻는 것과 같습니다.

아직도 더 추천할 선비들이 있는데 어찌 일곱이 많다고 하십니까"

"전국책"에 나오는 이 한토막의 이야기에서는 인재를 천거하는 손우곤의
자신만만한 대답이 왠지 속이 후련하도록 시원스럽게 느껴진다.

예나 지금이나 인재를 뽑아 쓰는 사람은 항상 "인재가 없다"고 입버릇
처럼 한탄한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 인재가 없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인재를 발탁하는
방법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 되고 만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이 공천자 인선마무리 작업에
여념이 없다.

정말 인재가 없는 것인지 소위 "물갈이"라는 것을 내세워 명망가 영업에
혈안이 돼 있는 것도 의석수를 늘리려는 속셈이 빤히 들여다 보여 꼴불견
이다.

자칫 잘못하면 사인과 압객만이 정치 대역에 두루 끼이게 될 염려도 없지
않다.

조선조말의 기철학자 최한기는 저서 "인정"에서 인재를 가려뽑는 "선흥"의
유형을 천칙 견누 고집 사욕의 네등급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그 우열을
논했다.

"천칙선거"는 평소에 인재를 약간명씩 기록해 두었다가 때가되면 공의를
널리 채택하여 자신이 들은 현자이거나 남이 추천한 현자이거나 간격을
두지 않고 그중에서 제일 훌륭한 자를 가려내는 최상의 인선방법이다.

"견루선거"란 평소 인재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없이 지내다가 자신의
앞날이 걸려있는 높은 사람의 청탁에 못이겨 결국 남의 의사만 따르고
마는 경우를 말한다.

또 "고집선거"란 문벌 학연 지연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융통성없이
인선하는 것을 뜻하고,"사옥선거"란 장사치처럼 뇌물을 주는 사람이나
친척을 뽑는 것을 가리킨다.

각당의 공천심사를 맡은 사람들이나 최후 낙점을 하는 사람들이 "천칙
선거"만 했으며 좋으련만 꼭 그런것 같지만도 않아 걱정이다.

엉뚱한 사람을 공천해준 사람은 항상 "부끄러운 마음"을 지니게 될 것이고
그 공천자는 총선에서 "낙선"이라는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니 딱한
노릇이 아닌가.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