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275) 제8부 아늑한 밤과 고요한 낮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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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인이 침대 옆에 서서 보옥을 내려다보니 보옥의 열굴에 눈물자국이
묻어 있었다.
습인이 보옥에 대한 연민이 일어나 그의 어깨를 흔들어깨웠다.
보옥이 눈물이 아직도 배어 있는 눈을 뜨고 습인을 바라보았다.
습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제가 집으로 가게 되었다고 이리 슬퍼하다니요? 도련님은 정말
저를 내보내고 싶지 않은거죠?"
"그럼. 두말할 필요가 없지"
보옥이 몸을 반쯤 일으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 그렇다면 도련님이 제가 나가지 않도록 하면 되잖아요"
"내가 너를 나가지 않도록 한다?"
보옥은 그게 무슨 소리인가 반문을 하다가 느낌이 이상해서 다시 물었다.
"무슨 조건이 있는 건가?"
"그래요. 조건이 있어요"
"그래 말해봐. 내가 다 들어줄테니"
다짐을 하는 뜻으로 보옥이 습인의 손목을 잡더니 더 힘을 주어 침대로
끌어들였다.
결국 습인이 보옥과 나란히 눕게 되었는데, 어떤 조건부터 제시할까
잠시 뜸을 들이자 보옥이 더욱 소리를 높여 재촉하였다.
"조건이 이백 가지 삼백 가지라도 들어주겠어. 내가 죽어서 재와 연기가
되어 날아가버린 후에라면 모를까,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내 옆에
있어줘.
내가 죽으면 나는 나대로 가는 것이고, 너는 너대로 가면 되겠지"
습인이 얼른 보옥의 입을 막으며 말했다.
"무슨 심한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내가 말하고자 하는 첫째 조건이
바로 그런 심한 말을 도련님이 함부로 하지 않았으면 하는 거예요.
도련님은 차분히 말해도 될 것을 과장해서 극단적으로 말하는 버릇이
있거든요"
"알았어. 그런 버룻 꼭 고칠게. 그게 습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던
모양이지? 그래 그 다음 조건은 뭐야?"
"둘째 조건은 어른들 앞에서 공부를 좋아하는 태도를 보이시라는
거예요.
말끝마다 공부가 싫다는 투로 언짢아 하니 어른들, 특히 도련님
아버님이신 가정 대감님이 도련님을 귀여워하실 리가 없죠.
공부가 마음으로는 싫더라도 말이에요, 겉으로는 좋아하는 척이라도
하란 말이에요.
도련님이 공부를 좋아하지 않으시는 까닭이 우리 시녀들에게 있다고
의심을 받고 있거든요"
"알았어. 그것도 지킬게. "대학" 이외에 다른 책들은 책 같지가 않아서
말이야.
다른 책들도 읽기를 좋아하는 척할게. 그리고 그 다음 조건은 또 뭐야?"
그러면서 보옥이 습인의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7일자).
묻어 있었다.
습인이 보옥에 대한 연민이 일어나 그의 어깨를 흔들어깨웠다.
보옥이 눈물이 아직도 배어 있는 눈을 뜨고 습인을 바라보았다.
습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제가 집으로 가게 되었다고 이리 슬퍼하다니요? 도련님은 정말
저를 내보내고 싶지 않은거죠?"
"그럼. 두말할 필요가 없지"
보옥이 몸을 반쯤 일으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 그렇다면 도련님이 제가 나가지 않도록 하면 되잖아요"
"내가 너를 나가지 않도록 한다?"
보옥은 그게 무슨 소리인가 반문을 하다가 느낌이 이상해서 다시 물었다.
"무슨 조건이 있는 건가?"
"그래요. 조건이 있어요"
"그래 말해봐. 내가 다 들어줄테니"
다짐을 하는 뜻으로 보옥이 습인의 손목을 잡더니 더 힘을 주어 침대로
끌어들였다.
결국 습인이 보옥과 나란히 눕게 되었는데, 어떤 조건부터 제시할까
잠시 뜸을 들이자 보옥이 더욱 소리를 높여 재촉하였다.
"조건이 이백 가지 삼백 가지라도 들어주겠어. 내가 죽어서 재와 연기가
되어 날아가버린 후에라면 모를까,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내 옆에
있어줘.
내가 죽으면 나는 나대로 가는 것이고, 너는 너대로 가면 되겠지"
습인이 얼른 보옥의 입을 막으며 말했다.
"무슨 심한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내가 말하고자 하는 첫째 조건이
바로 그런 심한 말을 도련님이 함부로 하지 않았으면 하는 거예요.
도련님은 차분히 말해도 될 것을 과장해서 극단적으로 말하는 버릇이
있거든요"
"알았어. 그런 버룻 꼭 고칠게. 그게 습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던
모양이지? 그래 그 다음 조건은 뭐야?"
"둘째 조건은 어른들 앞에서 공부를 좋아하는 태도를 보이시라는
거예요.
말끝마다 공부가 싫다는 투로 언짢아 하니 어른들, 특히 도련님
아버님이신 가정 대감님이 도련님을 귀여워하실 리가 없죠.
공부가 마음으로는 싫더라도 말이에요, 겉으로는 좋아하는 척이라도
하란 말이에요.
도련님이 공부를 좋아하지 않으시는 까닭이 우리 시녀들에게 있다고
의심을 받고 있거든요"
"알았어. 그것도 지킬게. "대학" 이외에 다른 책들은 책 같지가 않아서
말이야.
다른 책들도 읽기를 좋아하는 척할게. 그리고 그 다음 조건은 또 뭐야?"
그러면서 보옥이 습인의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