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추진됐던 정보공개법 제정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정부부처간 의견조정을 위해 지난 2일 열린 차관회의에서 재정경제원
건설교통부 농림수산부등 경제부처및 공보처 통일원 등이 이견을 보여
정기국회에 제출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는 내년 임시국회에서 통과되도록 논의를 계속하겠다고 하나 내년
4월로 예정된 총선을 고려할때 낙관적이지 못한 실정이다.

특히 최근 정치권 동향이 매우 불투명한데다 지난 2일이후 두차례 더 열린
차관회의에서는 안건으로 논의조차 안됐을 정도로 일부 부처 공무원들의
반대가 완강해 정보공개법제정은 사실상 물건너간 것이나 다름없는 느낌
이다.

그러면 정보공개법은 왜 만들어야 하며, 일부 공무원들은 왜 반대하고
있는가.

우선 민주국가의 공무원들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일처리
과정과 결과를 성실하게 알려야 한다.

그래야 정보의 독점 또는 편중으로 인한 부정부패나 편파행정이 예방될 수
있다.

일반행정이 투명하게 공개됐다면 어떻게 수서사건 같은 비리가 생길 수
있으며, 노씨의 천문학적인 비자금조성이 가능했겠는가.

다음으로 행정정보의 비공개는 정보화시대의 요구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이 강조돼야 한다.

현대는 정보화사회로서 세계각국은 정보통신산업의 발달을 촉진하기 위해
말그대로 혈안이 돼있다.

그리고 정보통신산업의 초점은 기기생산과 같은 하드웨어에서 기기이용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및 그 결과 얻을수 있는 정보의 양과 질로 옮겨가고 있다.

알고싶은 정보는 모두 비공개로 묶여 있고 쓸모없는 내용만 잔뜩 들어
있다면 어느 누가 많은 돈을 들여 정보통신을 이용하려 하겠는가.

이런 내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앞장서서 다른 부처들을 설득해야 할
정보통신부가 행정정보 공개에 적극 앞장서지 않는다면 정보통신산업의
육성은 말잔치에 그치고 말 것이다.

굳이 정보공개법을 만들지 않더라도 정보공개 지침을 정한 국무총리령이
있으니 충분하다는 주장은 국민의 알 권리와 공개행정요구를 정부의
자의적인 판단에 맡기라는 행정만능주의적인 발상이다.

또한 정보공개법안의 내용이 너무 급진적이어서 우리 현실에 시기상조라고
하지만 법안에는 국가안보, 공공이익, 인사비밀 등에 관련된 정보들이
모두 공개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특히 7조7항의 "공공기관의 의사결정에 현저한 지장을 줄 우려가 있는
경우"라는 규정이 너무 포괄적인데다 국가기밀보호법과 개인정보보호법이
이미 제정돼 있기 때문에 전혀 설득력이 없다.

김영삼대통령이 개혁입법의 하나로 국민에게 공약했고 지난 93년부터
입법이 추진돼 지난 7월 입법예고까지 됐던 정보공개법의 제정이 무산된다면
정부의 개혁추진도 물거품이 될수밖에 없다.

비자금사건을 계기로 정경유착의 방지대책을 세운다고 하나 행정부의
정보독점과 비공개, 그리고 규제남발이야말로 정치권력의 권력남용과 함께
뿌리깊은 정경유착의 원인임을 깨달아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