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은행 최초의 여성외환딜러"

"은행에서 영어를 제일 잘하는 사람".

조현수(27)씨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이다.

그녀는 국내에 있는 몇안되는 여성외환딜러중 한명이기도 하다.

외환딜러는 많지만 그중 여자는 대형은행에 3-4명, 외국은행에 2-3명에
불과하다.

각분야에서 여성들의 참여가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는데도 외환딜링분야
만큼은 아직 남성들의 독무대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런데도 보수성이 강한 국책은행에서 조씨를 첫 여성외환딜러로 낙점한
것은 그만큼 그녀에게 거는 은행측의 기대가 크다는 것을 말해준다.

은행의 기대에 어긋나지않게 조씨는 요즘 외환딜링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그녀는 중소기업들이 외화를 사거나 팔기를 원할때 매매를 해주는 기업
담당딜러.

어려운 중소기업들의 처지를 고려해 아무리 작은 주문이라도 성사시켜
주려고 애쓴다.

매일 오전8시 누구보다 먼저 외환딜링룸에 들어서고 야간딜링근무도
마다하지 않는다.

또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에는 금융연수원동기들과 함께 하는
"파생상품연구회"세미나에서 토론에 열중한다.

본인은 극구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영어를 잘한다고 소문이 난탓에
과외일로 "즐거운 창구영어"라는 사내방송프로도 맡아 여간 바쁜게 아니다.

내달에는 뱅크오브아메리카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하는 3주간
해외연수과정에 참가하기로 돼있어 요즘은 다소 들뜬 나날을 보내고 있다.

조씨는 한사람의 행원에 불과한 자신에게 이같은 기회를 만들어주고
배려해주는 은행에 대해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근무한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외환딜러로서의 첫해가 순탄치만은 않았다.

지난8월 환율폭등사태가 벌어졌을때 "굉장히 떨었던"데다가 일부 은행들이
큰손실을 입고 외환딜러들을 교체하는 것을 보고 마치 "파리목숨"처럼
한순간에 날라가는 외환딜러를 계속 해야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했었단다.

조씨는 이때를 외환딜러로서의 소중한 경험으로 간직하고 있다.

또 선배딜러가 냉정하게 손절매를 하는 것을 옆에서 보고 외환딜러가
어떠해야하는가도 배웠다.

지난90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조씨는 전공(고고미술사학)과는 전혀 상관
없는 금융계의 문을 두드렸다.

아버지의 권유가 있었던데다 산업은행 외환딜러인 오빠의 영향도 작용
했다.

그후 여동생도 증권전산에 입사, 3남매가 모두 금융유관기관에서 근무
하는 금융가족이 됐다.

조씨는 외환딜러로서의 시장경험을 바탕삼아 금융공학분야의 전문가가
되는게 목표.

금융공학은 파생금융상품거래등 각종 금융기법을 총동원해 기업들이
금융거래위험을 회피할수 있는 각종 상품을 원하는대로 만들어주는것.

현재는 국내기업들의 인식이 부족해 활성화돼있지 않지만 앞으로
개방화와 원화의 국제화가 진전되면 기업들이 금융공학의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할것이라는 예상이다.

지점근무시절의 외환업무경험과 외환딜러경력, 여기에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해외유학경력까지 보태는게 그녀의 바람이다.

<김성택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