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햇(BIG HAT)을 잡아라"

송대환 코오롱상사 모스크바지사장은 올초 서울 본사로부터 암호명과도
같은 긴급 오더를 받았다.

"빅 햇"은 다름아닌 러시아 최고실력자들의 친선 테니스대회.

옐친대통령도 이따금 짬을 내 참여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고실력자들의 사교모임인 만큼 접근이 어려울게 뻔한데 이 모임의 회원,
그중에서도 영향력있는 인사에게 선을 대 친선게임시 자사의 스포츠용품을
사용토록 공략하라는게 긴급명령의 요지였다.

하지만 외국기업의 일개 지사장이 러시아라는 강대국의 실력자들과 안면을
튼다는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이처럼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하는데서 시장공략은 시작된다.

송지사장은 오더를 받자마자 "빅 햇"의 회원명부 확보에 나섰다.

회원들의 인맥을 타고 목표를 찾아간다는 전략이었다.

회원 한사람 한사람을 훑은 끝에 가브리닌전체육부차관과의 연결고리를
마련했다.

가브리닌전차관은 서울올림픽 때 러시아선수단을 인솔했던 인물.

송지사장은 그를 앞세워 작전개시 6개월만에 "빅 햇"과 스폰서계약을
맺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액티브"브랜드의 테니스복과 운동화를 전달했다.

"빅 햇"작전의 성과는 비디오테이프 수출의 급신장으로 이어졌다.

현재 코오롱상사가 러시아에 수출하고 있는 주력제품은 (주)코오롱에서
생산되는 비디오테이프 "시나(SCENA)"가 주종이다.

코오롱상사가 러시아에 판 비디오테이프는 지금까지 모두 6,000만개 정도
(1억달러어치).

이는 러시아 가구당 1~2개정도의 코오롱 비디오테이프를 갖고 있는 꼴이다.

그러다보니 현지 소비자들에겐 비디오테이프하면 "코오롱 시나"로 인식돼
있다고 송지사장은 말한다.

코오롱은 사회주의체제 붕괴이후 러시아인들이 방향감각을 상실한채(?)
비디오에 탐닉하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해 비디오테이프를 수출품으로 선정
했다.

비디오는 비교적 널리 보급돼 있으나 어느누구도 비디오테이프에는 눈길을
주지 않더라는 것.

말하자면 국내외 대형상사들이 쳐다보지 않던 틈새시장을 재빨리 파고든
것이다.

< 이건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