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이 자본주의경제의 꽃이라면 투자자를 상대로 장세를 진단.
전망하는 "증권강연맨"들은 꽃가루를 옮겨주는 벌이라고 할수 있다.

현 장세가 대세상승기인지,아니면 장기적인 조정국면을 앞둔 일시적인
반등국면인지를 알려주고 투자전략도 제시하기 때문이다.

증시의 부침에 따라 선물을 받거나 멱살을 잡히면서 투자자들과
일희일비했던 이들은 그간 증권인구의 저변확대에 기여해왔다고
말할수 있다.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증권사의 증권강연이 시작된 때는 대체로
지난 75-76년. 당시만 해도 건설화학이란 종목이 건설주로 인식되던
시절인지라 칠판에 게시된 상장종목의 설명이 강연의 주종을 이루었다.

대신경제연구소 이교원이사(49)가 대신증권 조사부대리로서 대도시
동사무소를 돌며 증권안내슬라이드를 환등기를 통해 보여줬던 때도
바로 이때.

그뒤에도 줄곳 조사분야에서 일해온 이이사는 한해도 거르지않고
현재까지 전국 영업점을 1년에 두차례씩 찾아다녔다.

"경기흐름이나 금리변동등 경제변수를 분석하는 기법을 도입,투자자들
에게 대세상승을 선언했던 지난 84년 9월과 92년 9월에는 주가가 과연
올라 직업적인 만족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영업전략상 대세하락기라도 이시점이 도저히 "천정"이라고
말하지 못할때마다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이이사) 그에게 "적중의
쾌감"이 존재했던것만큼 "잘못된 예측"이 몰고오는 실망도 적지 않았다.

지난 76년 10월에는 대세하락을 주장했지만 78년 증시는 오름세를 보였고
추가상승폭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던 지난 82년 3월이후에는 주가가 크게
올랐다.

국내 증시가 유사이래의 활황장세를 보였던 지난 87-88년은 증권강연
스타들이 상한가를 기록했던 시절.

대신의 이이사를 비롯,산업증권의 김형철투자조사부장(43) 대우증권의
류근성투자분석부장(43)등은 장바구니를 든 아주머니,경운기을 몰고온
농부등을에게 강연키위해 대도시 공공기관강당을 빌렸고 경제지 기고는
물론,TV 라디오등에도 고정 출연하느라 영일이 없었다.

당시 동서증권경제연구소 산업조사부장으로 일했던 김부장은 "가격보다
가치가 우선한다"는 가치론을 들고 나와 미래의 변화상을 염두에 둔
주식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당시만 해도 같은 업종 주가끼리 큰 차이가 없었다. 일반투자자들은
같은 값에 더 많은 주식을 살수 있는 저가주를 선호했다.

대통령선거유세 인파에 버금갈 정도로 몰려든 투자희망자들에게 향후
정보화시대의 수혜폭이 클 삼성전자 태영 한국이동통신등을 장기투자할
것으로 권유했다"(김부장)

그는 이통주식이 2만원정도 갈 당시 외국사례를 들어 "50만원까지도 갈수
있지 않겠느냐"는 자신의 말을 우직스럽게 믿고 장기보유해 대규모의
차익을 남긴 투자자로부터 최근 김을 선물받기도 했다.

그러나 주가가 폭락했던 89년 봄에 지방에서 투자설명회를 갖다가 증권주
매입으로 큰 손해를 본 투자자로부터 멱살을 잡히기도 했다.

지난 93년 10월 당시 연말장의 상승과 핵심블루칩 종목의 매수를 추천한
것이 적중돼 유명세를 치렀던 대우의 류부장이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주가
폭락국면과 대규모강연이나 방송출연이후 꼭 오를 종목을 알려달라는
전화문의를 받을때.

"대충 받으면 건방지다는 욕을 먹을 것 같고 성의있게 받아주면 끝이
없다. 그 누구도 상승 종목을 알수 없는만큼 시장 상황설명으로 대신했다"

주가가 침체장세에 접어들었을때 이들은 전화를 받기부터 싫어진다.

정부와 증권사등을 비난하는 고객들의 목소리를 변명없이 묵묵히 듣고
난뒤 "더이상 나빠지면 뭔가 조치가 나오겠지요"라고 위안하는 것 밖에
달리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최승욱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