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순 < 국제복장학원 원장 >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철학자 볼테르는 그의 철학사전에서 "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두꺼비에게 미가 뭐냐고 한번 물어보라. 아마 그는 돌출한 두개의 큰 눈,
귀밑까지 찢어진 커다란 입, 노르께한 배를 뒤뚱거리는 암두꺼비를 가리키며
그것이 미라고 할것이다.

다음은 아프리카 흑인에게 물어보라.

그는 미의 기준을 번들번들한 검은 피부, 파묻힌 눈, 납작코를 들것이다.

악마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그는 분명히 이렇게 대꾸할 것이다.

미란 두개의 뿔, 갈퀴같은 앙상한 손가락, 그리고 엉덩이에 달린 꼬리"
라고.

결국 미란 상대적이기에 어느 하나의 정형으로 규정할수 없다는 뜻이다.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미의 기준변화는 극심하다.

3백(살결 치아 손), 3흑(눈동자 눈썹 머리카락), 3홍(입술 볼 손톱)등
30가지를 미인의 조건으로 정하고 신체는 되도록이면 꼭꼭 감싸도록한 조선
시대부터 미니스커트입은 경쾌한 차림을 신선하게 본 60년대, 청바지를
입지 않고 대학가에 나서는 것이 어색하기까지 했던 70년대를 지나, 이제는
파격적인 배꼽티가 널리 유행되는 것을 보노라면 패션계에 종사하는 사람
으로서도 그 변화가 어지럽게까지 느껴진다.

의상은 인간의 삶에 가장 기본적이고 직접적인 요소인 만큼 그 시대 상황과
의식변화에 늘 민감하게 반응한다.

의상이 사회변화를 반영하는 것뿐 아니라 의상의 변화가 사회변화를
이끌어내는 경우도 있다.

좋은 예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각국 서구화의 경우이다.

서구의 현대의상은 동양의 잠을 깨우는데 큰 역할을 했고 특히 우리나라는
황제가 억지로 시범착용한 양복이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일상복으로
정착하는 근간이 되기도 했다.

패션이 이렇게 그 시대의 반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유행의 흐름도 단순히
여유있는 이들의 유희로 치부할 것이 아니고 진지하게 연구하고 수집할
필요가 있다는데에 생각이 미치게 된다.

민족 고유의 "원형", 그리고 그 스타일에 세부적인 디테일이 첨가 변형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그 사람들 자체를 이해할수 있다.

패션디자이너들이 "옛것"을 알아야만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손때묻은 정감있는 것들을 모으기 좋아하는 버릇이 비록 작은 규모지만
박물관을 만들게 했다.

1백15평이라는 그리 넉넉지 않은 공간에 올해 6월9일 문을 연 "한국현대
의상박물관"이 그것이다.

초대 대통령부인 프란체스카여사의 제일모직 감으로 만든 수트, 59년도
미스코리아 오현주씨가 8회 미스유니버스대회에 나갈때 선보인 아리랑드레스
(디자이너 노라노씨 작품), 첼리스트 정명화씨가 닉슨대통령취임기념 백악관
연주회에서 입은 옷등 각기 소중한 이야기가 배어있는 옷들을 한 자리에
모은 것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에서 자주 접했던 의상박물관이 우리나라에는 없다는
것이 가슴아프게 느껴졌던 것을 생각하면 작은 규모나마 우리 것을 갖게
됐다는 데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의 서양식 복식도 벌써 1백여년의 역사를 갖게 됐다.

그 옷들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보고 내일을 조망해 볼수있는 의상박물관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나 앞으로 많은 분들의 애정과 도움속에 더욱 성장
발전하게 되리라 기대해본다.

한국현대의상박물관은 패션종사자는 물론 후학과 패션을 즐기는 모든
분들에게 소중하고 의미있는 장소가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