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민요가 노동요의 틀을 벗어나 전문적인 놀이패에 의해 노래로
불려지기 시작한 것은 구한말을 전후해서였다.

"사계축소리꾼"이니 "오강소리꾼"이니 하는 명칭이 생겨난 시기도
이무렵이다.

지금의 서울역 뒤쪽인 만리동과 청파동 일대를 당시에는 "사계축"이라고
불렀는데 그 곳에서 유명한 소리꾼이 많이 났다고 해서 "사계축소리꾼"이란
말이 생겼다.

이 지역출신의 소리꾼들은 "노래"축에 드는 가곡 가사 시조도 잘 불렀지만
"소리"인 앉아서 부르는 잡가를 잘 부르기로 소문나 있었다.

또 "오강소리꾼"이란 한강 용산 삼개(마포) 지호 서호등 한강변을 중심
으로 활약하던 소리꾼을 일컫는 말로서 이들은 "선소리"(립창)로 이름을
날렸다.

그 무렵 "사계축소리꾼"중에는 주수봉(1870~?)이란 명창이 있었다.

박춘근문하에서 공부한 그는 경서도창의 대가였다.

바로 그 주수봉문하에서 묵계월 이진홍 김옥심등 쟁쟁한 여류명창이
배출됐다.

서울 토박이인 묵계월이가 스승 주수봉을 만난 것은 13세 때였다.

그의 본명은 이경옥이었지만 11세에 부모를 떠나 양어머니에게 가서
얻은 예명이 묵계월이다.

스승에게서 "12잡가"를 속속들이 배운 그는 벌써 그때 가는 곳마다
"묵계월뿐"이라는 찬사를 듣는다.

뒤이어 명창인 최정식을 찾아가 그의 문하에서 "경기민요"를 모조리
배운다.

18세때는 경성방송국의 국악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름을 날렸고 뒤이어
부민관 명창대회에 출연해 장안명창의 자리를 굳혔다.

그 뒤에도 그치지 않고 꾸준히 소리꾼으로 활약해 오던 그는 지난 71년
같은 또래인 이은주 안비취 김옥심등과 "민요연구회"를 만들어 제자를
기르며 "경기민요"의 정통적인 맥을 이어왔다.

임정란 지화자 조경희 박순금등 "경기12잡가"의 맥은 누구보다 탄탄하고
요즘도 전수소에는 문하생들이 줄을 잇고 있다.

"백이숙제 착한 이와 도척같은 몹쓸놈도 죽어지면 허사로다"

누구나 할수 있을것 같아도 아무도 흉내낼수 없는 할머니가 책읽는 투의
청아한 목청으로 부르는 그의 "삼설기"는 단연 독보적이다.

중요 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예능보유자인 묵계월씨가 오늘 저녁
호암아트홀에서 75세의 나이로 소리한평생을 정리하는 무대를 갖는다.

60여년의 긴 세월을 갈고 닦아온 "사계축소리꾼"이 부르는 맑고
경쾌하고 부드러운 잡가의 진수가 어떻게 되살아날지 궁금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