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여승 정허가 희봉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선재암으로 장씨 가족이 불공을 드리러 왔을때, 공교롭게도 장안부
부윤의 처남되는 이도령이 절간에 있다가 장씨의 딸 금가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다.

그래 금가를 자기 아내로 삼기위해 장씨의 환심을 사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

그런데 금가는 그때 장안수비 벼슬자리를 지낸 바있는 사람의 아들과
정혼을 하고 납채까지 받아놓은 입장이었다.

장씨는 이도령 쪽이 더 마음에 들어 납채를 다시 돌려줄까 하고도
생각하였지만, 의리상 차마 그럴수는 없고 또 설사 돌려준다 하더라도
그쪽에서 납채를 돌려받을리 없을 것이었다.

할수없이 장씨는 이도령의 요구를 거절하고 말았다.

그래도 이도령은 금가가 아니면 다른 데 장가갈 마음이 없다면서
끈질기게 장씨를 물고늘어졌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금가가 자기와 정혼을 하고 납채까지 받았다는
식으로 소문을 내었다.

그러자 장안수비 집에서 진상을 알아보려고도하지 않고, 딸 자식
하나를 두집에 팔아먹었다면서 장씨를 욕하고 덜컥 재판에 걸어버렸다.

사태가 이렇게전개되니 장씨도 화가나서 어떤 수를 써서라도 납채를
장안수비 집으로 돌려주고 금가의 정혼을 무효화해야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게되었다.

그리하여 장씨는 수월암으로 옮긴 정허를 수소문끝에 찾아와서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정허는 수월암사의 말사이고 철함사는 원래 녕국부와 영국부에서
세운 절이라 그 권세를 빌리면 장씨의 어려운 문제를 풀어줄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제나 저제나 영국부에 들를 기회가 있으면 대부인에게 장씨의
사정을 아뢰고 재판이 장씨에게 유리하게 되도록 힘을 써달라고
부탁하려던 차에 마침 진가경의 장례를 당하여 희봉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정허의 이야기를 다 들은 희봉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난색을 표명하였다.

"그만한 일이라면 별로 어려울 것도 없지만 대부인 마님께서는
그런일에 상관하기를 좋아하지않는 성미시거든요.

그런 비슷한 일이 우리 일가 중에도 있었는데, 그때도 마님께서는
상관하지 않으시고 저의 시숙모이신 왕부인에게 다맡기셨지요"

"그럼 이번에는 아예 희봉 마님께서 맡으시면 되겠네요"

정허가 막역한 사이인 것처럼 슬쩍 희봉의 이름까지 불러가며 바투
다가앉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