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유, 잘 먹었다. 수월암 만두는 언제 먹어도 일미란 말이야"

희봉이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입가를 손수건으로 닦았다.

보옥과 진종도 노 여승 정허에게 만두를 대접해준데 대해 감사의 말을
올리고 슬그머니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

날은 완연히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지선과 지능은 그릇들을 씻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간 후였다.

"진종이 너 확실하게 이야기해봐. 지능에게 마음이 있는 거지? 지능도
너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던데. 그렇다면 말이야, 난 지선이랑 어떻게
해볼게. 넌 지능이랑 잘 해봐"

보옥이 양보하는 척하자 진종이 반색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발소리를 죽여 암자 뒤편 주방으로 다가가 장작더미 뒤에 몸을
숨겼다.

등잔불이 새어나오는 주방에서 그릇 씻는 소리가 간간이 들리고
있었다.

지선과 지능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밝게 웃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였다.

두 여승의 웃음소리를 들을 적마다 보옥과 진종의 사타구니가 묵직해졌다.

"그럼 나 먼저 가서 잘게. 몸이 안 좋아서 말이야. 지능이 좀 수고해"

지선이 그렇게 말하며 주방에서 나와 별실과 떨어진 여승방으로 갔다.

그 방은 큼직한 회나무에 가려져 있어 다른 방에서는 그 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보옥과 진종은 이거 잘 됐네 하는 표정으로 서로 눈짓을 하고는 각자
자기 짝이 있는 데로 다가갔다.

보옥이 숨을 몰아쉬며 지선이 혼자 들어가 있는 방문을 손등으로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누구야? 지능이야? 주방 일이 벌써 끝났어?"

"저어, 보옥이야"

"아니, 보옥 도련님이 웬 일이에요?"

지선이 당황해 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지 지선에게 할 말이 조옴 있어서"

보옥은 자기도 모르게 말을 더듬고 있었다.

"무슨 할 말요? 할 말이 있으면 아까 별실에서 하시죠"

"별실에서는 사람들이 있어서"

"나에게 은밀하게 할 말이 무얼까? 그럼 지금 말해보세요"

지선이 방문도 열어주지 않고 말을 하라고 재촉하였다.

보옥이 한숨을 내쉬며 주방쪽을 바라보았다.

그쪽에서는 벌써 진종과 지능이 몸을 섞고 있는지도 몰랐다.

지선도 나에게 마음이 없구나.

보옥은 풀이 죽어 슬그머니 여승방 앞을 떠나 주방으로 다가가보았다.

주방은 불이 꺼져 있고 거친 숨소리만 새어나오고 있었다.

보옥의 물건이 불뚝 성을 내며 일어섰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