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고독은 원래 혼자 있는 고독, 혼자 사는 고독이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독을 사랑하는 자는 야수든가 아니면 신"
이라고 했다.

인간이 인간이기를 거부하지 않는한 고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본성이
있다.

그래서 어느 인간에게나 가족이나 이웃이 있고 소속된 사회집단이나
국가가 있다.

A 노벨은 한때 유럽에서 "백만장자 부랑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적이
있었다.

그는 화약발명으로 엄청난 재산을 모아 유럽 각지에 연구소와 주택을
가지고 있었으나 집이 없었다.

사랑을 주고 받을 가정이 없었다.

영예와 물질에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혜택을 누린 그였지만 고독
속에서 살았다.

노벨의 생애에서 보듯이 가정은 인간이 고독을 극복하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기초적인 수단이 된다.

그에 못지 않게 사회집단이나 국가의 역할 또한 크다.

사회학자인 E 프롬이 한 말이 그것을 뒷받침해 준다.

"한 사람의 독일시민으로서 나치즘의 원리에 아무리 반대한다 하더라도
고독한 생활을 하는 것과 독일의 일원으로 소속되어 있는 것 중에서
한쪽을 택해야 할 경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후자를 선호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와는 정반대의 고독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인간과 함께 있으면서 느끼는 고독,인간의 물결속에서 혼자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되는 고독이다.

다시 말해 한 개인이 군중속에 매몰될때 생기는 자아상실감이 가져다 주는
고독이다.

이러한 고독은 인간과 더불어 있으면서 해결될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곁을 떠나야만 해결될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자연히 사회를 등지는 도피증세에 빠질수밖에 없다.

그 증상이 확산될 경우 종내엔 사회의 해체로 이어지는 것이 필연적일
것이다.

근년 들어 우리 사회에도 젊은이들 중에 외부와의 교류를 피하고 자신만의
공간에서 고독한 생활을 즐기는 "나홀로족"이 늘어나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관심을 끌게한다.

다른 사람과의 접촉은 물론 가족의 간섭마저도 받기 싫어 "밖에서 집으로,
집에서 방으로"들어가 음악감상을 하거나 전자게임 PC통신 비디오영화를
즐긴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세상사나 남의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또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은채 자유롭게 혼자만의 생활을 즐기려는 "고독한
세대"의 미래상이 어떤 것일지 걱정스럽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