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50년,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은지 반세기가 지났다.

돌이켜보면 고난의 세월이 더 길었다.

광복의 기쁨을 누릴 사이도 없이 동족상잔의 참화에 짓밟혔다.

반도의 허리가 두 동강으로 잘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떠안아야 했던
부담은 아직도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5.16 10.26 등이 낳은 강원통치로 민주주의는 꽃이 피기도 전에 커다란
시련을 겪기도 했다.

유무형의 일제잔재는 망령처럼 곳곳에 살아 있다.

하지만 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뜨거운 열망은 헌정사의 굴곡을 힘겹게
넘어 90년대들어 문민정부를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지난 6월27일 지방자치제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러내 소중한 풀뿌리민주주의
도 탄생시켰다.

허리띠를 졸라맨 중노년층의 잘살아보겠다는 의지로 무에서 1만달러경제
시대를 일궈내는 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경제는 50년의 암흑기를 지나 60~70년대의 성장기를 거쳐 80년대
성숙기를 통과하는 압축성장을 지속하면서 선진대열을 넘볼만큼 숨가쁘게
달려왔다.

전진만을 계속해온 우리 민족은 광복 50년을 맞아 새로운 전환점에 섰다.

새로운 21세기의 시작도 불과 4년 앞으로 다가왔다.

굴절의 역사를 매듭짓고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일이 새삼 시대적 소명
으로 강조되는 시점이다.

역사의 매듭짓기는 분단의 그늘과 일제잔재의 청산을 통해 이룰수 있다.

그래야만 선열들이 피흘려 쟁취한 광복의 의미도 살릴수 있다.

이는 진정한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도 풀어가야 할 숙제다.

미래창조는 무엇보다 풍요한 통일한국 통일경제시대를 열어가는 일임도
자명해졌다.

건국이념인 민주주의를 계승 발전시켜 더욱 내실화하고 공정한 시민사회를
만드는 일도 미래창조의 선결과제다.

경제적으로는 시련과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다.

올해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가 상징하듯 세계는 무한경쟁시대에 돌입
했다.

세계의 중심역할을 놓고 벌어질 국가간 기업간 경쟁은 그 어느때보다
치열하다.

세계를 향해 비상하려는 한국기업들에는 적잖은 시련이 될수도 있다.

반면 기회도 넓어지고 있다.

공산권의 몰락으로 자본주의가 세계경제체제로 확고히 자리잡으면서 돈
상품 용역 지적소유권등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지구규모의 경제시대가 개막
됐다.

한국기업들이 나래를 펼 공간은 활짝 열렸다.

아득하기만하던 남북관계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추스리고 고쳐야 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개방화 국제화의 거센 물결을 헤쳐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경제의 비효율이
산적해 있다.

세계를 향해 뛰려는 기업의 발목을 붙잡는 각종 규제의 장벽, 여전히
선진국의 2~3배에 달하는 고금리를 비롯한 경제의 고비용구조등이 심각한
상황이다.

금융실명제등 경제개혁조치등이 국민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지 못하고 삐걱
거리고 있다.

광복50년기념사업으로 옛조선총독부(국립중앙박물관)건물을 철거한다지만
대일의존도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서울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붕괴에서 단적으로 드러난 "대충 대충, 빨리
빨리"풍조의 폐해가 누적돼 국민적 자존심마저 처참하게 무너졌다.

한국경제신문이 현대경제사회연구원과 공동으로 실시한 국민들의 경제관련
의식구조조사에서도 미래를 낙관하지 못할 징후들이 여러 측면에서
나타났다.

앞으로 5~10년이 미래를 위해 중요한 시기라는 점에 80%이상이 공감하면서
도 시대적 조류인 시장개방에 적극 동참하기보다는 오히려 늦춰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보릿고개를 넘어온 국민들의 투지는 현저히 약화되고 내탓보다는 부정부패
탓이라는 피해의식이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이대로는 곤란하다.

역사창조의 방관자 입장보다는 동참자 내지 선도자로서의 적극적인 의식
전환이 시급하다.

급박하게 전개되는 새로운 경쟁질서는 더이상 우리민족에게 연습을 허용
하지 않는다.

1백년전 개화기에 시도했던 세계화의 실패나 지난50년간 해내지 못한
역사의 매듭짓기실패를 다시 반복할수는 없다.

선진경제권진입여부를 가름할 대변혁의 한복판에서 맞은 광복 50년의
아침을 소중히 가꿔야 한다.

우리는 세계의 주역으로 웅비할수 있는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제 진정한 경제선진국이 되기위해 경제구조의 세계화를 추진하고 이를
이루어내고야 말겠다는 경제주체들의 의지를 북돋워야 한다.

정부 기업 국민 모두 지난 50년간의 성과를 더욱 살리고 실패를 거울삼아
한국경제의 선진화를 향해 새롭게 도전하는 진취적 기상이 필요하다.

일제잔재를 극복하고 감정의 앙금이 깔린 반일의식을 승화시키는 것도
경제선진화를 통한 실질적인 경제구조의 자립으로 이뤄낼수 있다.

북한핵협상타결, 남북교류, 북한과 미국및 일본과의 수교협상등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신외교전략으로 통일의 그날을 준비
해야 한다.

광복 50년의 진정한 의미를 살릴수 있는 통일대비는 이제 현실적인 숙제로
다가왔다.

4년후로 다가온 21세기의 세계주역이 되기위해 광복 50년의 각오를 우리
모두가 새롭게 다져야 한다.

<고광철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