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잘 알려져 있듯이 우리나라는 사전에 정부가 면밀하게 짜놓은 계획에
따라 정부주도의 경제발전을 이루어온 모범적인 나라로 꼽힌다.

1962년부터 5개년 경제사회발전계획이 7차례에 걸쳐 수립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경제사회발전계획은 이번으로 끝내고 8차 계획은
세우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한 결정은 생산규모나 국제무역 규모면에서 세계 10위권에 이를 만큼
성장한 우리 경제가 이제 더 이상 정부주도의 계획을 필요로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계획에 의해서 통제할 수도 없는 단계에 와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한 결정은 세계화란 명분을 앞세운 국가경쟁력 강화의 명분이라든가,
지금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자유무역주의와 같은 큰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큰 흐름은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축소및 작은 정부를 강력하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흐름과는 상반되는 또 하나의 큰 흐름이 전 세계에
걸쳐 일렁이고 있다.

범지구적 환경보전을 큰 명분으로 내세우는 소위 "지속가능발전"의
이념이 그것이다.

잘 알려진대로 이 이념은 92년 유엔이 브라질에서 개최한 전대미문의
지구정상회담에서 채택된 범지구적 이념이다.

이 이념은 단순히 경제성장과 환경보전의 조화를 촉구하는 정도가
아니라 경제성장의 의미 그 자체를 심각하게 음미할 것을 촉구한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 정부가 강력한 실천의지를 실어서 제시한
경제성장 목표는 2010년께까지는 1인당 국민소득 3만5,000달러대의
선진국이다.

자동차 보유대수는 2명당 1대정도,도시화율은 거의 90%,전국 어디서나
30분 이내에 고속도로에 들어갈 수 있는 반나절 생활권의 형성등이
청사진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700만대 안팎의 자동차만으로도 도시의 대기오염과 혼잡이
이렇게 극심한데 이의 서너배가 넘는 2,500만대가 이 좁은 국토에
깔린다고 하면 그 때의 대기오염과 혼잡은 어느 정도일까.

1인당 국민소득 3만5,000달러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이용량이
지금의 3~4배는 되어야 할 텐데 이렇게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태우고도
우리의 대기환경이 과연 온전할 수 있는지.90%에 가까운 도시화율,그리고
반나절 생활권을 달성하기 위한 도로건설이 몰고올 녹지훼손과 생태계
파괴의 악영향은 과연 어떠할까.

이런 질문들은 미래에 우리의 생활의 질에 관계될 뿐만아니라 어쩌면
우리의 생존에도 관계되는 문제일지도 모르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답은 아무곳에서도 찾아볼수 없다.

요컨대 단순히 선진국이 되기 위한 경제목표의 설정에 급급할것이 아니라
그러한 목표들이 우리의 좁은 국토,우리의 열악한 환경의 수용능력에
비추어 과연 가능한가를 심각하게 물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추세로 보아서 아마도 대부분의 환경관련 전문가들은 이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인 대답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국토와 환경의 수용능력에 맞게 경제목표를 다듬어야 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중국 인도등 세계의 모든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
들이 미국처럼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 전세계적
으로 쓰이고 있는 자원의 7~8배나 더 많은 엄청난 양의 자원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자원고갈과 환경오염 때문에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한다.

따라서 전 세계의 모든 나라가 지금의 미국처럼 물질적으로 잘 살수는
도저히 없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보아도 경제적인 목표를 자연적 수용능력의
범위안으로 다듬어 넣을 필요성이 제기되며 지속가능 발전이념의 핵심적인
메시지가 바로 이점이다.

어떻든 전 세계적으로나 또는 한 국가안에서나 경제적인 목표를 국토와
환경의 수용능력에 짜맞춘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 방대하고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고 따라서 정부의 적극적이고도 폭넓은 개입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 계획은 과거의 경제계획과는 전혀 차원을 달리한다.

과거의 계획은 경제적인 것에 국토와 환경을 적응시키는 그런 성격의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부터 우리에게 필요한 정부차원의 계획은 국토와 환경의
수용능력을 꼼꼼히 점검하고 이 수용능력의 틀에 경제적인 것을 깎아
맞추는 그런 성격의 계획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목표의 의미를 심각하게 점검해야
할것이다.

과거의 정부개입은 경제적인 것을 명분으로 했지만 앞으로의 정부개입은
국토보전과 환경보전을 내세워야 명분이 설것이다.

지속가능 발전이념의 실행지침서인 "의제21" 역시 환경보전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이고 폭넓은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