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원자력연구소가 직원 한사람을 보직해임했다는 사실은 그다지 큰
일이 아니다.

정부의 인사권에 속하는 일이므로 국민의 관심대상이 안된다.

그러나 미묘한 시기에 국민의 이목이 쏠려있는 "한국형경수로"의 산파역
이 계통설계의 책임자가 해임됐기 때문에 그 배경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
이다.

보직해임된 이병 씨란 누구인가.

그는 87년 영광 3,4호기 건설때 공급기업인 미컴버스천 엔지니어링(CE)에서
기술전수를 받기위해 원자력연구소 기술진을 이끌고 가 "CE로부터 핵심 설계
기술을 뺏어오다시피 한"사람이다.

그는 첫 한국형경수로인 울진3,4호기 건설당시의 사업부장으로 설계와
건설의 실무 책임을 맡았다.

또 이씨는 동료 2명과 함께 92년8월 영국의 권위있는 학술지인 "핵공학"에
"한국표준형 원자력발전소"란 논문을 발표해서 "한국형"의 존재를 국제무대에
등장시켰다.

그는 작년6월 워싱턴에서 열렸던 한.미.일 3자협의에 참석하는등 북핵
협상에 관여하기도 했다.

원전관련 전문가들은 "당시 러시아형을 북한에 공급하려는 미국의 의도에
쐐기를 박은 사람"이라고 평했다.

한편 공노명외무장관은 "계통설계가 핵심기술이기는 하지만 참여규모는
원전건설총비용 3조원중 6백억원밖에 못차지하는 작은 규모"라며 "원연측이
연구소 이익을 위해 과장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사효율을 위해 42억달러의 자금조달을 맡은 한국전력이 주계약자가 되고
원연은 하청업체로 참여하면 된다는것이 한전과 외무부 과기처등의 입장인
모양이다.

또 정부관계자들 사이에도 한국표준형의 독자기술에 회의를 품는 사람들이
있다 한다.

한마디로 독자기술을 축적했으므로 더 이상 외국기업의 기술지원이 필요
없다는 원연측과 핵심기술을 미측에 의존하려는 한전측이 심각한 갈등을
겪다가 한전측이 판정승을 하게 된것이 이씨의 해임파문을 일으키게 된
계기가 됐다는 설도 있다.

우리는 지금 외무부쪽 견해가 일리있는지 이씨가 정치적인 희생양이
됐는지 판단할 근거가 없다.

문제는 자연인인 그의 배재가 아니라 "한국형경수"건설이 사실상 실종
되거나 껍데기만 남게되는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에 있다.

더구나 원연을 경수로건설의 재하청역으로 격하시키는 과정에서 외부
입김이 작용했다는 풍문마저 있어 의구심을 더하게 한다.

정부당국의 속 시원한 해명이 있었으면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