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 가면 아직도 버티고 있는 수많은 구조물들을 보고 놀라게 된다.

1,500년이 넘은 바오로사원의 기둥은 도대체 어떻게 만든 것인가.

그 우람한 대리석 기둥에 그저 경탄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하다.

지은지 몇년만에 무너진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의 잔해를 보며
스스로 부끄러움에 몸을 떤다.

이것들이 과연 우리의 후손돌을 생각하며 만든 것들인가.

최근 경제가 제법 살아남에 따라 여의도에,잠실에,도곡동에 100여층의
건물이 계획되고 있다고 한다.

유례없이 경제는 두자리수를 향해 달려가고 국민소득은 1만달러를
목전에 두고있다.

그리고 전국민이 월드컵유치를 기대하고 있는데 이 어인 날벼락인가.

과자부스러기처럼 부스러진 시멘트나 엿가락처럼 휘어져 버린 철근의
앙상한 모습이 너무나 처참하다.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가.

인명은 이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다.

9일 아침 최명석군이 구조되는 텔레비전 화면을 아마도 전국민이
눈시울을 붉히며 보았을 것이다.

며칠을 초인적 의지로 버티다 구조된 후 꺼진 젊은 이은영씨의 넋도
너무나 애처롭다.

언제 다시 허물어질지 모르는 현장에서 목숨걸고 작업하는 구조대원이나,
줄을 이은 헌혈자나,자원봉사자들의 뜨거운 인간애에도 우리는 가슴이
뭉클하다.

며칠사이 우리는 생명가치에 대한 애절한 휴먼드라마를 직접 겪었다.

인명은 지선이다.

그렇다면 분명하다.

만에 하나라도 붕괴의 위험이,그래서 인명 손상의 위험이 감지된다면
그같은 공사는 피해야 하고 또 하자가 있으면 조속히 대처해야 하지
않았던가.

한 두명 희생되어야 그 보상금이 얼마나 되랴는 식의 막가는 타산은
없었을까.

실제로 공사판에서 허무하게 지는 생명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관심을
가져 주었는가.

역사는 되돌릴수 없다지만 최근 몇년간 연이은 대형 참사의 쓰린
경험이 너무나 쉽게 망각 속에 묻히고 있다.

인명경시 신드롬이라도 만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우리는 거기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전국민은 모두 똑같은 혼돈과 충격에 빠져 있다.

이 어이없는 참사의 원인은 부실공사로 모아지고 있다.

설계도 부실이었고,설계변경도 멋대로 하였고,허가도 적당히 얻어냈고,
감리도 없었고,시공도 회사를 바꿔가며 멋대로 하였고,용도도 멋대로
변경하였고,전문가의 도움도 없이 냉각탑을 옮기고,기둥을 제거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공무원들과의 유착이 있었고,그래서 허가와 준공 그리고
안전검사도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이 우리사회의 한 단면과 같다.

바로 일그러진 우리 건설의 초상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의 건설투자는 국민총생산의 23%에
이른다. 건설대국이다.

미국이 7%,일본이 18%이니 그만큼 허우대는 커졌다.

그리고 그동안 해외시장에서 많은 실적을 쌓았다.

나름대로 경험도 다채롭다.

재작년에 해외건설 수주가 총 1,000억달러를 돌파했고,작년에는 동남아
시장을 주 무대로 70억여달러를 수주했다.

그만큼 성가도 높다.

지금 건설회사의 일꾼들은 70년대 중동시장의 경험을잘 알고 있다.

까다롭기 그지 없던 외국인 감리자들에게 시달리던 기억 말이다.

그들은 타협이 없었다.

융통성이 없다고 얼마나 투덜대었던가.

건설은 인명과 직결되어 있고 인명은 지선인만큼 허술한 공사가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다.

건설업계는 작년을 부실공사추방 원년으로 선언한 바 있다.

달라지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건설시장에는 하도급비리,감리비리,
감독비리등으로 이어지고 부실의 고리는 끈끈하다.

건축물이나 구조물은 관리하기에 따라 수명은 무한이라 할수 있다.

서양 사람들은 몇백년이 된 건물도 리모델하여 쓰는데 우리는 왜 이러나.

거듭 사고를 당하면서도 사회 전반에 걸쳐 재해에 대한 인식과 인명
관리가 너무나 허술함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재해란 국가경제의 누수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불쑥 찾아와 우리에게 엄청난 손실을 강요한다.

그동안 애써 일구어온 성과의 한 모서리를 허물어 놓고만다.

여기에는 천재지변도 있고 인재도 있다.

예방하기 힘들지만 대비의 정성에 따라 손실을 줄일수 있기 때문이다.

인재는 바로 우리 탓이기에 더욱 우리를 안타깝게 만든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다양화하고 사회가 복잡다단화함에 따라 뜻하지
않은 곳에서 우리는 인재를 만난다.

당연히 사고의 유형도 복잡해지고 항상 우리 주변에는 위험성이
잠복해 있다.

이제 앞만 보며 뛰기만 할 것이 아니라 흘러내리는 손실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더구나 인명의 가치는 끝없이 존중되어야 한다.

호프만식이니 하인리히식이니 하는 보상금 몇푼으로 덮어지는 것이
아니다.

효율적인 국가관리란 재해를 최소화하여 사회가 굴러가도록 하는
것이다.

또 설령 그같은 재해를 당했다 해도 이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사후
대비책이 준비되어야 한다.

정부가 마냥 허둥대며 자원봉사자와 국민성금에만 기댈 수는 없지
않은가.

삼풍자리에,그리고 성수대교 행주대교 근처에 위령탑이라도 세워서
죄없이 죽은 혼을 위로하고 그리고 우리 모두 잊지 말자.인명지선을
강조하는 서울의 명물이 되어도 좋다.

선진국으로 가는 길은 얼마나 인명을 중시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