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 로비스트들은 여러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적어도 영어와 불어 2개국어는 모국어처럼 능숙하게 구사한다.

그리고 누구를 만나던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는 버릇이 있다.

"시간은 돈"이란 개념이 몸에 배여있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특징은 자신을 로비스트라 말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변호사 회계사 컨설턴트 산업협회대표등으로 불리길 원한다.

따라서 어떤일에 개입하든 익명을 요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직도 "로비"란 개념을 "부정한 행위"정도로 간주, 미국과는 달리 이들의
활동이 비공개적이다.

영국 공인회계사협회의 브뤼셀 상주대표인 줄리언 페일슨시는 그 주요이유
로 "EU가 15개국이 모인 연합체"란 점을 들고 있다.

워싱턴은 미국이란 한국가의 조직을 상대로 로비를 전개, 보다 공개적이며
적극적인 활동이 가능한 반면 브뤼셀은 국가적 연합이기 때문에 그 활동의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역내 정부간 또는 기업간 이익이 상충될때가 많아 이같은 분위기가 조성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영국의 15만 공인회계사를 위해 EU고위층을 만나고 관련 입법과정에 영향을
주는 그도 자신이 로비스트란 사실을 강력히 부인한다.

워싱턴 주재 상무관을 지낸바 있는 이희범 주EU대표부 상무관은 EU관리들의
한직제한이 이런 분위기를 형성하는 또다른 이유를 제공하고 있다고 분석
한다.

미국의 무역위원회등에 근무하는 관료들은 일반적으로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때 같이 그만두지만 EU관리들은 정년시까지 한자리에 머무는 "직업이전
의 한계"가 그 이유란 설명이다.

실제로 미국 관리들은 재직시 세계적기업과 공식적인 관계를 맺은후 그
연줄을 활용, 퇴임과 함께 그 회사의 로비스트로 자리를 옮기는게 일반적
이나 EU관리들은 장기근무를 위해 가급적 임기중 "잡음"을 남기길 꺼리고
있다.

브뤼셀 로비스트세계에 나도는 10계명과 같은 "활동지침"을 보면 이런
분위기를 손쉽게 엿볼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유럽이 최근 소개한 로비스트 활동지침중 금기사항의
첫번째는 로비에서 유럽의회의원들에게 접근하지 말것.

둘째는 EU관리들은 공개적인 접촉을 싫어하니 명함을 조용히 놓고 갈
것이다.

권고사항은 로비대상을 신속히 결정한후 종이 한장에 요구사항을 요약,
접근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로비대상에 은밀히 접근, 신속히 성사시키는게 최상책이란 뜻을
담고 있다.

전직 EU관료이며 현재 아킨 굼프법률사무소의 자문역으로 일하고 있는
조스루프씨는 "공격적인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며 집행위 관리들과의 접촉시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물러갈때 물러갈줄도 알아야 그 관계가 유지된다는 얘기다.

유럽의회가 로비스트 등록제를 제안하고 나선것도 이때문이다.

자신이 대변하는 이익단체와 금전사용등을 명기한 로비등록부가 있는
미국과는 달리 EU내에는 비공식적으로 모든 로비활동이 진행되고 있어
부정한 행위가 발생할 소지가 그만큼 크다는 견해가 깔려 있다.

특히 로비스트들중에는 전직은 물론 현직 EU관리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어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영국출신 사회당의원인 글린 포드씨는 "로비스트들의 행위에 투명성이
결여돼 있으나 이를 규제할 근거가 없다"고 전제, 최소한의 기본규정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등록되지 않은 로비스트들이 의사당 주변을 서성대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뱃지"착용을 의무화하자고 제안, 의회내에서 상당한 호응을 받고
있다.

이에대한 로비스트들의 반대는 만만치가 않다.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경우 일을 성사시키기 어렵다는게 그 첫번째
이유이다.

컨설팅사인 힐 앤드 놀튼의 엘라인 크뤼크생크여사는 "로비스트들의 행동
규범을 마련하는데는 동의하지만 그경우 고객들이 떨어져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개적으로 로비활동을 펼치길 원하는 고객이 없다는 뜻이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로비스트는 "EU가 공개적으로 업무를 처리한다면
비도덕적인 행위는 일어나지 않을것"이라며 오히려 EU측의 비공개업무를
비난했다.

로비스트를 통하지 않고는 집행위에서 진행중인 사안을 관보나 기자브리핑
을 통해 발표되기전 입수하기는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브뤼셀에서 벌어지는 로비행위는 분명 워싱턴의 그것과 다르다.

EU의 입법과정이 투명성을 결여, 로비활동도 비공개적으로 펼쳐지는 곳이
브뤼셀이다.

그러나 그만큼 끼어들 여지가 큰것도 사실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