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씨의 요리 솜씨가 대단하다는 말을 들은 설부인은 자기도 질세라 자신의
특별 요리법으로 만든 거위 발바닥 요리와 집오리 혓바닥 요리를 내왔다.

"재료는 같지만 솜씨는 다르니까 고기 맛이 전혀 다를 수도 있을 거야"

설부인은 은근히 우씨보다는 자기 솜씨가 나을 거라는 말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런 귀한 요리는 그냥 먹기는 아까운데요. 술안주로 먹으면 기가 막힐
텐데"

보옥이 입맛을 다시며 말하자 설부인은 자기 요리를 어떻게 해서든지
먹여볼 욕심으로 시녀들에게 집에서 제일 좋은 술을 내오도록 하였다.

옆에서 보옥의 수작을 듣고 있던 유모 이씨가 술은 안된다고 펄쩍 뛰며
설부인을 말렸다.

유모는 대부인으로부터 보옥이 술을 마시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당부를
톡톡히 듣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설부인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모 앞에서 마시는 술인데 별 탈이 있을라구. 유모는 아무 걱정 말고
저쪽 방으로 건너가서 술이나 좀 마시고 자도록 해요"

설부인은 시녀들에게 보옥의 유모에게도 술대접을 잘 해드리라고 지시를
하였다.

유모 역시 눈도 내리고 하는 추운 저녁에 술을 좀 마시고 싶던 차라, 에라
모르겠다 하고 건넌방으로 옮겨갔다.

늘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하는 유모가 자리를 뜨자 보옥은 숨통이 트이는지
얼굴에 생기가 돌기까지 하였다.

보옥은 설부인이 정성껏 만들어 온 요리를 안주로 연거푸 서너 잔을
비웠다.

대옥은 보옥 옆에서 수박씨를 까서 그의 입에 넣어주기도 하였다.

보채도 보옥의 술시중을 들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특히 설부인이 무슨
생각에서 인지 보채로 하여금 안주 그릇을 보옥 앞에 갖다 놓도록 자주
심부름을 시켰다.

보채는 어렴풋이나마 어머니 설부인의 속마음을 눈치채고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어찌하지 못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대옥은 이리 저리 경계를 하며 보옥의 관심을 끌기에
여념이 없었다.

술이 기분좋게 취한 보옥이 장난을 치는 척하며 대옥 쪽으로 쓰러졌다가
보채 쪽으로 쓰러졌다가 하였다.

그러면서 보옥은 자기 마음이 어느 쪽으로 더 많이 쏠려 있는가 가늠을
해보았다.

아직까지 아무래도 대옥쪽으로 쏠려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언제 마음이
변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 대옥의 못된 성질에 시달릴 때는 마음씨 고운 보채가 더 나은 듯이
여겨지는 경우도 없잖아 있었다.

그래서 보옥은 대옥과 보채가 합해진 것 같은 선계의 그 겸미라는 선녀가
늘 그리운지도 몰랐다.

대옥의 아름다움과 보채의 아름다움을 겸하였다고 겸미라는 이름을
가졌는가.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