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철, 박신철, 김명곤, 최창호, 이승준, 양순영회원 등.
이중 땡볕이든 추운 겨울이든 설쳐대는 열성파는 20명 내외인, 내가
총무부장이라는 후광(?)덕분에 회작직을 맡고 있다.
최근 회사근처의 테니스코트가 개발로 밀려나는 바람에 새로운 코트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는 상황이다.
나는 집을 분당으로 옮긴 후에도 집 근처 테니스클럽(청구 테니스클럼)에
새로 입회했다.
그러나 고수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차마 회사에서 테니스회 회장이었다고는
말도 못하고, 맨 말석에서 경기를 하다가 잦은 실수로 파트너 눈총이나
받아가며 기죽어 사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다행히 이번 봄철대외에서는 파트너를 잘 만난 덕분에 B조에서 3위로
입상하여 손상된 체면에 다소 위로를 받긴 했지만 구겨진 체변은 영 말이
아닌 상태다.
이를 회복하는 길은 연습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아침레슨을 신청하려고
했지만 이도 여의치 않아 이미 고수들이 아침레슨시간을 다 차지해
버렸으니, 내 차례가 올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 밖에..
동네 테니스회는 회원들이 각기 직업도 다르고, 연령도 차이가 많지만
테니스 동호인이라는 공감대 하나만으로도 자주 어울리는데 휴일이면 늘
커피, 간식 등을 해오시는 분도 있고, 내기경기에서 잘하면 식사도 공짜로
떼울 수 있는 기회도 있다.
또한 할일 없는 저 시간, 경기 후 그처 치킨집에서 맥주라도 마시게 되면
음주운전 염려가 없다는 해방감으로 노래방이나 단란주점까지 2차, 3차로
자리가 이어져 귀가가 늦는 때가 부지기 수,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집식구의
잔소리 뿐이지만 그래도 늘 이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이제는 비공식적으로
나마 집사람도 묵인해주고 있는 상태다.
회사 테니스회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는 것이 동네 테니스회인 것 같다.
지난번 부친상을 당했을 때도 먼 곳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회원들이 찾아
주신 것은 테니스로 일구어진 또 다른 만남이 아닌가 생각하며 지면을
통해서나마 감사드린다.
아무튼 이재저래 취미를 테니스로 하는 것은 늙어서 까지 이어져야 될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