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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오르는 동남아] 기고 : 수하르토 후계구도와 대인니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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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승윤 <외대교수/동남아학>

    수하르토의 자카르타 정부는 집권이래 "정치와 국방"의 두 날개를 가진
    군부의 전통적인 이중기능을 극대화하여 이 나라의 정치와 경제는 물론
    이고 사회와 교육 종교 문화등 국민생활의 다방면에 걸쳐 군사문화의
    막강한 영향력을 확산했다.

    이 과정에서 군부(ABRI)와 수하르토의 통치조직인 골카르(Golkar)가
    주된 역할을 했다.

    이들 두 세력의 절대적인 지지를 배경으로 수하르토는 70년대에 있었던
    두 차례 총선거 (71년과 77년)에서 이슬람 세력의 만만치 않은 도전과
    저항을 경험한 후 80년대 이후 부터는 안정기로 들어섰다.

    이 나라 최고권력기관인 국민협의회(MPR)는 83년에 대통령에게 "국가
    개발의 아버지"( Bapak Pembangunan Nasional )라는 칭호를 부여함으로써
    수하르토는 정치적 전성기를 구가하였으며,그 이후로 그의 인기도는
    완만한 하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군부가 대체로 중립적인 자세를 견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골카르가 지난
    87년의 제5차 총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까닭은 주곡자급을 목표로 한
    수하르토의 농업개발정책 성공과 꾸준한 경제발전및 지속적인 발전상황
    전개에 따른 국민적 기대가 적기에 선거로 연결되었던 까닭이었다.

    93년3월 수하르토의 5년 임기 6선 대통령 취임과 관련,자신의 공식적인
    출마표명 이전에 제2당이자 이슬람 정치세력을 대표하는 통일개발당(PPP)
    을 포함한 정치및 각종 사회단체가 경쟁적으로 수하르토 지지선언을
    하였다.

    그러나 지난 25년 이상 자카르타정부를 막강하게 지지해 온 수하르토의
    골카르는 거의 마지막 수순을 밟았다.

    군부 또한 수하르토를 대체할 인물을 공식적으로 거명하지는 않았으나
    대통령의 장기집권과 노령,그리고 대통령일족의 패밀리 비즈니스 폐해
    등을 들어 영예로운 하야를 주장하는 일부 이슬람지도자들과 재야 정치
    세력및 대학생 그룹에 동조하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실제로 92년의 제6차 총선거에서 군부는 이전 보다 더욱 중립적인
    태도를 지켰고,따라서 수하르토의 인기도와 직결되는 골카르의 지지율이
    87년의 경우보다 5% 이상 하락해 68%에 머물렀다.

    이를 두고 서방 관측통들은 수하르토가 6선 대통령에 취임한 후 임기
    만료 이전에 부통령에게 대권을 넘겨주고 은퇴할지도 모른다는 성급하고
    희망적인 관측을 하기도 했었다.

    수하르토는 군부의 중립과 골카르의 퇴조로 자신의 통치기반이 점차로
    약화되는 것을 정확하게 감지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65년의 9.30사태
    이후 계속해서 정치적 사회적 활동을 최대한 억제하였던 이슬람 세력의
    정치적 역할을 강화하였다.

    그는 이미 80년대의 농업정책 성공으로 인구 70%를 점유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농촌의 무슬림(이슬람교도)들의 지지를 확보하고 있던
    터여서 이슬람부흥운동을 보다 용이하게 전개할수 있었다.

    유능한 경제관료인 하비비( Habibie )를 내세워 이슬람지식인협회(ICMI)를
    결성하고 광범위한 이슬람정책을 개발하였다.

    또한 수하르토는 93년10월 자신으로 부터 거리를 두고 있는 골카르의
    제5대 의장에 전통적인 군부출신을 배제하고 민간인 출신이자 이슬람사회의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하르모코( Harmoko )를 지명하였다.

    수하르토는 장기집권을 통하여 어떤 상대라도 불쾌하지 않게 굴복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게 된듯하다.

    이러한 그의 수완을 인도네시아인들은 자바 속담을 빌려 "응알라께
    딴빠 응아소라께"( Ngalahake tanpa ngasorake : 무릎 꿇리지 않고
    굴복시킨다는 뜻)라고 한다.

    수하르토는 금년초 자신의 처남이며 차기 대권주자의 한 사람으로
    급부상한 위스모요( Wismoyo )를 관례를 깨고 육군사령관직에서 해임한
    후 자신과 이슬람 사회에 신망이 두터운 하르토노(Hartono)를 후임으로
    임명하여 다시 한번 세인을 놀라게 했다.

    이로써 냉전체제 붕괴후 정치적 중립을 궁극적인 목표로 독자적인
    지위 확보를 시도했던 군부를 다시 한번 확고하게 장악하게 되었다.

    당.정.군에서 3H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있는 수하르토는 98년 이후에도
    건강이 유지되는 한 계속해서 집권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수하르토의 후계구도 논의는 시기상조라 할수 있다.

    따라서 포스트 수하르토의 정정불안 가능성을 예견,서방세계의 대
    인도네시아 투자감소에 대한 대책으로 자카르타 정부가 갖가지 양호한
    외자유치정책을 내 놓고 있는 지금이 이나라에 대한 대규모 투자의
    최적기가 아닌가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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