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이사출신인 전승대씨(54)는 지난 93년 은평구 응암4동 257번지의
구옥을 헐고 지상4층의 근린생활시설을 지었다.

전씨는 92년 일산으로 이사하는 것을 계기로 응암동의 구옥을 팔려고
했으나 부동산경기의 침체로 매각을 포기했다.

시가의 60%로 매도하자니 지난 15년간 살아온 집에 대한 애착이 컸기
때문에 당분간 1가구 2주택의 세제상불리함에도 불구,구옥을 유지키로
했던 것.

그러던 전씨가 구옥을 개발하고자 맘을 먹게된 것은 뚜렷한 노후대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양대공대를 졸업한 전승대씨는 지난 82년초 현대시멘트 이사대우를
끝으로 광업에 손을 댔다.

그러나 영업부진으로 사업을 그만두고 85년에는 느지막한 나이에
국회의원비서관생활을 하게됐다.

그러나 전씨는 비서관 생활이 직업의 속성상 불안하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안정적인 노후대비책을 강구하게 됐는데 마땅한 대책이 없어 그동안
개발을 미뤘던 응암동의 집을 개발케 됐다.

전씨의 구옥은 응암4동 파출소와 대림시장의 중간에 위치해 있는데
주위에는 충암중.고교와 우성아파트가 있다.

113평의 비교적 큰 땅인 전씨의 구옥부지는 원래 앞을 지나는 4m
소방도로에서 3.5m비탈로 이루어진 완만한 경사지였고 위로는 10m
야산정상쪽으로 길다란 계단이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가옥을 중심으로 파내려가면 무조건 지하층이 되기때문에
전씨는 구릉을 절토해 소방도로와 높이를 맞춘 지상1층이 건축법상으로는
지하1층이 되는 셈이다.

건축은 93년 11월 시작돼 이듬해 5월 끝이 났는데 건폐율 42%를 적용,
지하없는 지상4층(건축법상으론 지하1층 지상3층)으로 지었다.

용적율을 올려 5-6층까지 건축하고 싶었지만 가용자금이 부족해
4층으로 만족해야 했다.

설계비를 포함한 평당공사비는 근린생활시설물이 일반주택보다
내장재가 거의들지 않기 때문에 평당 150만원선으로 합의봤는데
총공사비가 모두 3억원이 소요됐다.

지상1-지상4층은 모두 50평으로 지어졌는데 지상1층은 카페트대리점으로,
지상2층은 미술학원및 한글속셈학원등으로 각각 1인에게 임대했다.

지상3-지상4층은 16.5평으로 구분,층당 3가구를 임대했다.

전씨의 총임대수입은 보증금 2억2,800만원과 월세 330만원으로 지상
1층이 전세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180만원,지상2층이 전세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150만원이었다.

지상3-4층에는 모두 6가구가 있는데 가구당 전세보증금 3,800만원등
모두 2억2,800만원이었다.

이는 모두 월세없이 전세보증금을 전환했을때는 건축비 3억원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전씨는 한달에 330만원이라는 고정수입을 얻었으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개발이전보다 집값이 크게 올랐다는 것이다.

구옥의 시세는 4억8,590만원으로 이는 집이 너무 오래돼 구옥건축비는
받지못하고 땅값으로 시세인 평당 430만원선인 모두 4억8,590만원에
불과한 반면 개발을 완료해보니 4억8,590만원에다 최소한 건축비
3억원이 투자된 8억원이상으로 집값이 뛰었다는 것이다.

결국 전씨는 고정적인 월수입이외에도 최소한 3억원의 부가적인
재산을 더소유한 셈이다.

개발을 끝내고 전씨가 아쉬워하는 것은 건축당시 자금이 달려 건물을
높게짓지 못했고 건축비를 아끼다 보니 건물모양도 가운데를 중심으로
대칭되는 단순한 형태를 띄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씨는 그당시의 자금여건으로 보면 최고의 노력을 기울여
가장 효율적으로 개발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