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말의 성찬"에 그쳤던 한일산업협력이 초엔고를 계기로
새지평을 열고 있다.

"1달러=80엔대"의 엔고시대에 양국간 산업협력은 한국에는 첨단기술이전의
"기회"로,일본엔 비용절감의 "탈출구"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한마디로 양측의 이해가 딱 맞아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최근의 한일산업협력 무드는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다.

분위기만 잡힌게 아니라 실질적인 협력확대가 가시화되고 있다.

일본기업들은 신엔고이후 대한부품조달과 투자진출을 확대할 움직임이다.

한국은 이에대해 일본기업 투자유치의 문을 더욱 활짝 열었고 제3국
공동진출에 발을 맞추는등 화답하고 있다.

지난 13,14일 이틀간 제주도에서 열린 "제27회 한일.일한 민간합동경제위원
회"는 이런 점에서 예년의 회의와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개막식에서 박재윤통상산업부장관이 "외국인 전용공단 입주 기업들에는
임대료를 면제해주고 수입선다변화 적용에 예외를 인정하겠다"며
한국과 일본 기업간의 "호혜적 동반협력"을 강조한데 대해 일본
기업인들은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산업협력 메뉴들을 내놓았다.

일본기업들이 한국의 전기.전자 기계등 8개 중소기업에 기술이전사업을
자발적으로 벌이기로 한 것등이 그렇다.

실제로 엔고이후 최근의 한일 산업협력은 과거와은 다른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게 사실이다.

한일간 신동반협력의 첫걸음은 일본기업들의 대한 부품조달 확대에서
시작된다.

엔고에 따른 고비용 탈피의 돌파구로 원료와 부품의 해외조달을
늘리고 있는 일본기업들에게 한국은 가장 적절한 수입창구로 활용될만
하다.

거리상으로나 한국의 기술수준에서나 모두 그렇다.

이런 추세는 자동차 조선 철강 전자 반도체등 전업종에 걸쳐 확산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여기서 한발 더나가면 부품업체의 대한투자로 이어진다.

생산설비를 아예 한국으로 옮겨 저렴한 부품을 생산,조달하는 것이다.

기술상의 한계로 인도네시아 태국등 동남아로 생산기지를 옮기기
어려운 중.고급기술의 부품은 한국이 투자의 적지로 떠오르고 있다.

엔고로 더이상 일본기업들이 끌어안고 있을수 없는 전기.전자 자동차
부품분야의 대한투자가 최근 활기를 띠고 있는게 그런 조짐이다.

이를통해 한국은 자연스럽게 일본의 중.고급기술을 이전받고 수평적
분업의 토대를 다질수 있게 된 셈이다.

엔고의 과실을 한국과 일본이 서로 나눠갖고 있는 것도 신협력의
한 모델 케이스다.

최근 대우중공업이 일본의 화낙사와 수치제어(NC)공작기계의 핵심부품인
콘트롤러의 수입가격을 6%,얀마사와는 스키드로더(건설장비의 일종)
엔진 수입가격을 5%씩 각각 인하키로 합의한 것이 좋은 사례다.

한국기업은 부품수입선을 일본에서 제3국으로 돌리지 않는 대신
일본기업은 수출가격을 깎아 줌으로써 엔고로 얻은 가격이득의 일부를
한국측에 떼어준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기업이 손을 맞잡고 제 3국시장에 공동으로 진출하는
경우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 현대중공업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컨소시엄을 구성,올 상반기중
사우디아라비아가 발주할 예정인 10억달러 규모의 대형발전설비
국제입찰에 참여키로 한게 대표적인 것이다.

현대측은 미쓰비시가 급속한 엔고행진에 따라 미국 유럽의 라이벌
업체보다 코스트면에서 유리한 한국기업에 손을 내민것으로 보고
철도차량 선박등 다른 분야의 해외 대형프로젝트에서도 공동진출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밖에 삼성전자가 지난해 8천만달러에 그쳤던 대일수출규모를
오는 97년 8억달러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우고 일본의 가정에
알맞는 "일본형 제품"개발에 착수한 것도 초엔고시대에 한일경제관계의
새로운 양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한일간 새로운 협력의 장은 열렸다.

이 "마당"위에서 얼마나 높은 협력이 성을 쌓을지는 이제 두나라
기업들이 손발을 어떻게 맞추는냐에 다린 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