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시자가 인간세상으로 내려가자 강주 선녀는 그야말로 이한천에
사는 무리들과 같은 신세가 되었다.

이한천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자들이 원통한 마음을 안고 모여
사는 하늘로, 서른세개 하늘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강주 선녀는 견디다 못해 경환 선녀를 찾아가 호소하였다.

"그 분은 감로로 저를 길러주셨건만 저에게는 갚아 줄 감로가 없습니다.

그 분께서 하계로 내려가 인간이 되셨다고 하니, 저도 내려가 온전한
인간이 되어 제가 일생동안 흘릴 눈물을 그 분에게 바쳐 그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을까 하옵니다.

그러니 제가 인간세상으로 내려가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경환선녀는 강주 선녀의 애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신영시자와 강주 선녀가 그러한 애틋한 사연을 안고 인간세상으로
내려갔다는 소문이 퍼지자 호기심이 많은 천상의 무리들이 너도나도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여러가지 사건들이 벌어졌다.

강주 선녀가 신영시자를 찾아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보니 세상은 온통
남녀의 정사로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관한 이야기들도 유치찬란하게 꾸며져 널리 퍼져
있었다.

남몰래 만나 안타깝게 정을 통하는 이야기라든지, 기회만 있으면
배맞는 남녀끼리 농탕질을 일삼는 이야기 같은 것들 뿐이었다.

강주 선녀는 신영시자와 자기의 사랑 이야기는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정사 이야기와도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강주 선녀에 관한 이야기를 어느 승려와 도인이 열심히 주고
받는 것을 진사은은 꿈속에서 들었다.

승려와 도인은 이야기를 거의 마친후, 어리석은 물건을 경환 선녀에게
돌려주고 나서 자기들도 인간세상으로 내려가보자고 수군거렸다.

진사은은 궁금한 것들이 너무 많아 그들에게 다가가 이것 저것
물었으나 천기를 누설할 수 없다면서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진사은은 마지막으로 어리석은 물건이라고 하는게 도대체
무엇인지 그것 만이라도 가르쳐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자 승려와 도인은 못이기는 척하며 그 물건을 꺼내 보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건 당신과 인연이 있는 물건이기도 하오"

진사은이 그 물건을 받아들고 자세히 살펴보니 선명하고 아름다운
옥인데 거기에는 "통령보옥"이라는 네 글자가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뒷면에도 작은 글자들이 몇줄 새겨져 있었다.

그 구절들이 무엇인가 들여다 보려는데 승려와 도인이 태허환경에
벌써 다 왔다면서 진사은에게서 그 옥을 얼른 잡아채갔다.

그 바람에 진사은이 퍼뜩 잠에서 깨어났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