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북한의 깊은산속에서 고향과 가족을 그리며 눈물을 삼키고 있을
다구치 야에코를 외면하고는 그 어떤 양심과 정의도 말할 수 없을 것같은
절박감에서 쓰게 됐습니다"

87년 KAL기 폭파범 김현희씨(33)는 세번째 고백록 "이은혜, 그리고
다구치 야에코" 출간과 관련, 20일 서울롯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렇게 밝혔다.

이책은 김씨가 북한에서 자기의 일본인화교육을 담당했던 이은혜 (본명
다구치 야에코)라는 여인과 1년8개월동안(81년7월~83년3월)함께 지냈던
기억을 담고 있다.

책을 쓰게된 직접적인 이유는 "얼마전 북한에 불시착한 주한미군
헬기사건을 지켜보면서 일개 초급장교의 송환을 위해 애쓰는 미국인의
태도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은혜는 그에게 교육을 시키면서 온갖 정성을 쏟았다는 것.

김씨는 이에 대해 "아마도 나를 자신의 분신으로 만들어 꿈에 그리던
고국땅에 보냄으로써 대리만족을 느끼고자 했던 것같다"고 말했다.

처음엔 거리감과 경계심때문에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지만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낯선 땅에 끌려와 기약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녀에 대해 연민의 정을 느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책이 "학생층을 비롯한 일부 친북한 인사들이 북한을 바로
아는데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요즘 그는 하루일과의 대부분을 신앙생활로 보낸다.

남는 시간에는 책을 쓰거나 번역한다.

사회생활 적응을 위해 수사관들과 가끔 새벽에 남대문시장도 가고
시내버스도 타본다.

그때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활기를 느낀다고 전했다.

그는 "그동안에 낸 2권과 이번책등 3권의 고백수기 인세수입을 모두
KAL기 유족을 위해 쓰고 싶다. 하지만 아직 유족과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의 이번 고백수기는 4월중 일본문예춘추사에서 일어판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 태 >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