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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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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방한 무인의 기질을 타고난 조선조 세조는 공신들을 궐내에 불러들여
    공식.비공식 연회를 자주 베풀었다.

    그리고는 신하들의 취중언행을 살펴 자신에 대한 충성의 도를 쟀다.

    심지어 신숙단 한명회등 심복들은 침전에 까지 불러들여 술을 마셨다는
    "세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왕숙이 절대적이었던 조선초의 단면을 읽을수
    있다.

    그러나 지식인의 공론을 무엇보다 중시한 토림정치가 자리잡은 조선중기
    에 오면 왕이 마음대로 할수 있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제도가 완비되어
    왕숙은 축소되고 만다.

    아무리 왕의 총애를 받는 높은 신하일지라도 홀로 임금과 만나 정치에
    관한 의견을 상주하는 "독대"라는 것은 제도적으로 금지돼 있었다.

    왕의 곁에는 항상 사관과 승지,내시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설령 독대를 했다고해도 스스로 떠벌이지 않으면 아무도 몰랐고 주고
    받은 대화내용이 공개되는 경우는 더 드물었다.

    그런데 아주 이례적인 경우가 딱 하나 있다.

    규장각에는 "독대설화"라는 17면의 얄팍한 필사본 한권이 전해온다.

    우암 송시열이 이조판서로 있던 1659년3월31일 효종과 단둘이 대화한
    내용을 그 이틀날 기록했다는 귀자료다.

    이 기록에 따르면 우암은 그 자리에서 공론임을 내세워 자신의학통인
    이이와 성혼의 문묘뱅향, 소현세자의 빈인 강빈의 옥사와 그 일을 거론
    하다 죽은 김홍도의 신원등을 역설했다.

    그리고 효종은 양병을 해 북벌하겠다는 정책을 털어놓았고 우암은 북벌을
    하기위해서는 민생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원칙론을 주장했으며 당시 중요
    인물의 북벌에 대한 태도까지 평가했다고 한다.

    효종이 다른 신하들을 먼저 나가도록 하고 승지와 사관, 내시까지 물리친
    뒤에 단 둘이만 대화를 했다고 적어놓은 것을 보면 "독대"를 한 셈이다.

    왕명으로 몰려나와 사관과 승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정사에 관한 의견을
    상주하는 "소대"보다는 한 차원높은 비림회담이었다.

    정향에서는 요즘 야당의 원내총무가 대통령과 독대를 한 것이 파문을
    일으켜 당사자는 물론 그를 불러들인 대통령까지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우암의 독대가 더많은 정적을 만들어 결국 당쟁을 강화시켰듯이 현대판
    독대파문이 더이상 부작용을 낳지는 말았으면 한다.

    우암이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써놓은 대화내용을 뒤에 그의 정적들이
    믿지 않았던것처럼 대통령과 독대한 당사자가 공개한 대화내용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은 뻔하다.

    예나 지금이나 역시 정치가들의 비밀스런 만남은 좋은 것은 아닌가
    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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