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영 < 국토개발연구원장 >

과거 우리는 못배운게 한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그들이 겪었던 온갖 수난의 시절을 모두 못배운 죄로
치부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서러워할 때도 그랬다.

해방후,그리고 6.25동란후 사회의 격동기 속에서 배고파할 때도
그랬다.

실제로 봉건사회가 무너지고 신흥 지배계급이 새롭게 형성될때 주역은
주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해방 직후에는 일본 유학파들이,그 이후에는 미국 유학파들이 득세했다.

그리고 일류대학을 나온 고학력파들이 항상 권력층을 차지했다.

그래서 늘 못배운 것을 탓했다.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아마도 세계 제일일 것이다.

변변히 먹지 못하고 살 집이 없어도 자식들은 대학교육까지 응당
시켜 주어야 하는 것이 부모의 도리로 알았다.

가난만은 대를 물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농촌 사람들이 소를 팔아서 자식들 교육비를 댔다 해서 상아탑을
우골탑이라 부르기도 했다.

부모가 없으면 누이가 몸이라도 팔아서 동생을 공부시키는 미담이
흔한 소설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지금도 우리 가계비에서 교육비가 가장 큰 항목이다.

많은 부모들은 자식들 교육비 부담으로 허리가 휘어지고 있다.

과외비를 대기위해 어머니가 파출부를 하고 아버지는 오버타임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옛날에는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소를 팔았지만 지금은 대학가는
경쟁을 위해,다시 말해 사교육비를 조달하기 위해 고생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아이들의 학력은 과외의 힘,즉 부모의 능력과 비례한다는
말도 있다.

이제 게임은 아이들간의 게임이 아니라 부모들간의 재력 게임이
되어 버렸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가장 풀기 힘든 한국병이다.

얼마전 교육개발연구원의 발표는 사뭇 충격적이다.

사교육비가 무려 연간 17조원이나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변칙적인 해외유학,별도의 사례비,비밀과외 등을 합친다면
정말 천문학적인 액수다.

학원 과외등 사교육비가 학교의 공교육비보다 훨씬 더 많다.

뿐만 아니라 사교육비는 매년 엄청난 속도로 늘고 있다.

세계에 이런 나라가 또 있는가.

부모들도 "우리 아이"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에 빠져 공교육비 지출에는
인색하고 사교육비는 물쓰듯 한다.

이제 학교생활은 아이들의 생활중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어쩌다 우리의 교육기관이 이처럼 불신을 받게 되었는가.

영국같은 계급사회와는 달리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돈을 벌수
있다는 소위 어메리칸 드림이 바로 미국 신천지개발의 원동력이었다.

누구나 높은 교육을 받고 일류학교를 나오면 출세할수 있다는 "코리안
드림"이 우리의 치열한 교육열을 유발하고,그리고 이것이 우리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다.

미국 이민사회에서도 높은 교육열이 2세들이 이국에서 자리잡는데
큰 힘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양약도 너무 쓰면 독이 되듯이 지난친 경쟁으로 인한 교육환경의
황폐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처방을 내릴 때가 되었다.

최근 발족한 세계화추진위원회에서도 국정의 첫번째 과제로 교육개혁을
들고 있으니 기다려 보자. 교육비와 관련하여 일단 사교육비의 비대화를
막는 길은 공교육을 제자리에 놓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학교 중학교를 학교답게 만들어야 한다.

세계화를 외치는 요즘 예산당국자들에게 선진국의 국민학교 중학교를
돌아보라고 하고 싶다.

내일 모레면 우리도 선진국이 된다고 하지만 난방시설을 제대로
갖춘 학교가 몇이나 되나,실험기재를 몇가지라도 갖춘 학교가 몇이나
되나,아담한 잔디밭이나 운동시설을 제대로 갖춘 학교가 몇이나
되나.

옛날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그런대로 유명한 시인도 계셨고 화가도
계셨다.

지금은 학계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교수님들도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셨다.

학교에 이런 분들을 교사로 모셔서 교직자 스스로,그리고 학생들도
자긍심을 갖도록 해야한다.

우리나라처럼 교사들을 박봉에 시달리게 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학교시설도 보강하고 교사들의 처우도 대폭 개선해야 한다.

학기제도 고치자.겨울방학을 없애거나 줄이고 봄과 가을에 브레이크(짧은
휴가)를 넣자.지금 우리는 일제때의 학기제를 그냥 쓰고있다.

따지고 보면 모두 돈이다.

지금 국가재정의 19%를 교육비로 쓰지만 항상 태부족이다.

교육세를 올리자.이미 드러난대로 교육세의 추가재원 잠재력은 아주
높다.

학교를 학교답게 만들어서 학부모들이 마음놓고 아이들을 맡기도록
해야한다.

그리고 교사가 성직자처럼 존경받을수 있는 직업이 되어야한다.

왜 우수한 교사들이 학원으로 빠져 나가도록 내버려 두는가.

지금 고교평준화의 해제 여부를 두고 풍파를 일으킬때가 아니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더이상 입시로 묶거나 황폐한 경쟁터로 내몰아서는
안된다.

교육분야의 경쟁이란 교육수요자인 학생들이니 학부모간의 경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교육공급자인 학교와 교사간의 서비스와 질의 경쟁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학재정은 다른 차원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대학교육은 이미 보편화되었지만 그래도 일부에 국한되어 있다.

대학의 지원은 형평차원에서 바람직스럽지 않다.

특히 국립대학에 대한 지나친 특혜는 사립대학과 비교할때도 일부
계층에 대한 특혜로 나타난다.

일류대학들이 대학의 경영혁신이란 말을 앞세워 기금모금경쟁에
나서고 있는 것도 별로 바람직스런 양태는 아니다.

대학경영자체를 등록금의 자율화와 함께 대학에 맡기면 된다.

얼마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대학에 지원되던 재원도 나는 몽땅
초등.중등교육으로 돌리는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나는 내가 쓰는 교육비만큼 좋은 교육환경에서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고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