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넥타이맨"들은 마음속에 몇개의 방을 갖고 있을까.

자상한 남편, 돈 잘버는 가장, 능력있는 직장인의 몫을 모두 잘 수행해야
하는 슈퍼맨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샐러리맨.

이들은 제각각의 방에서 나와 미로찾기를 반복하거나 아니면 스스로의
방에 갇히면서 살아간다.

이명세감독의 "남자는 괴로워"는 이들이 갖고있는 마음의 방을 페이소스
넘치는 코미디로 잘 비춰내고 있다.

오성전자 신제품개발부에 근무하는 다섯 남자와 한 여자가 주인공.

전체 줄거리는 별것 아니지만 테마위주의 극처리가 돋보인다.

승진한지 5년이 넘도록 아이디어 한번 제출하지 못한 만년과장 안성기.

10년간 대리자리를 고수한 허풍쟁이 최종원과 깐깐한 홍일점 김혜수.

여기에 "장군의 아들" 박상민이 곱슬머리 마마보이로 가세한다.

송영창은 학벌좋고 능력도 있어 고속승진중이지만 의처증때문에 아내
뒤쫓기에 바쁜 송차장으로 나와 기막힌 표정연기를 펼친다.

호화배역들이 모자이크식으로 등장, 다소 산만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아쉽다.

초반부의 좌충우돌하는 장면은 욕심내지 않아도 괜찮았을 듯한 부분.

그러나 사표를 던진뒤 과로사한 안성기가 후임과장인 박상민앞에 나타나
창밖의 환상적인 눈을 선사하는 장면은 이채롭다.

직장과 가정이라는 두개의 방.

두가지가 만나는 지점 위쪽 다락방쯤에 "꿈의 방"이 있는 셈이다.

안성기 최종원 김혜수트리오의 연기폭도 주목할 만한다.

설 개봉작 "영원한 제국"에서 역사속의 인물로 나란히 출연한 세사람이
여기서는 전혀 상반된 이미지로 탈바꿈해 관객들을 놀라게 한다.

(2월11일 피카디리 그랑프리등 개봉예정)

< 고두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