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제네바합의의 이행시간표에 따라 마지막 순간 대북한 엠바고 완화
조치를 발표했다.

이를 두고 말들이 많다.

북.미합의의 문제점을 공격하는 공화당지배의 의회눈치를 봐야 했다느니,
또 한국정부의 입장을 고려해서였다느니 그럴듯한 소문이 무성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국이 최대한의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점이다.

통신과 정보, 금융거래, 부분적 무역거래등의 내용을 보면 쉽게 알수 있다.

이번 부분적 해제조치를 두고 한국정부는 우리가 주장해온 북미관계 개선과
남북한대화의 병행원칙을 미국이 수긍했다고 말하고 있다.

과연 그럴지는 한번쯤 생각해 봐야할 것 같다.

자위한다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미국의 이번 대북조치는 전혀 새로운게 아니다.

기존의 적성국 경제완화조치및 철폐에 적용했던 선례들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의 예가 바로 그것이다.

클린턴대통령이 지난해2월 베트남에 대한 금수조치철폐를 선언했다.

양국간의 연락사무소 개설을 불과 얼마 앞두고서 였다.

이번 대북경제조치 완화도 북미간 연락사무소 설치를 3월이전에 마친다는
합의일정에 따라 발표된 것이다.

그 범위 역시 통신및 금융거래에 관한 내용을 우선 일차적으로 선정한
점에서도 베트남에 취했던 수순을 따르고 있다.

물론 베트남과는 그 배경에 있어 차이가 있긴하다.

미.베트남은 정치적 이슈가 걸리지 않은 상황에서 관계정상화를 위해
수년동안 노력을 기울였다.

상하원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청문회가 열렸고 이해 당사자들의 탄원이
줄을 이었다.

의회의 각종 청문회에는 베트남계 미국인 실업가대표, 베트남참전 미국
대표, 베트남관련 대기업들이 성명서를 발표하고 강력한 로비를 펼쳤다.

이때 그들이 요구했던 첫번째 완화조치가 정보및 통신의 자유로운 왕래,
여행교류 문화 교육 과학분야에서의 교류, 관련 사무소의 설치허용등이었다.

북한의 경우는 핵문제와 연계됨으로써 의회에서의 논의없이 행정부의 대북
정책의 일환으로 발표되었다는 점이 다르다.

형식은 그렇지만 내용은 앞으로 베트남의 전철을 밟을게 확실하다.

미국은 지난해 베트남에 이어 올해는 북한이라는 또하나의 시장을 선점하게
됐다.

계속 대어를 낚아 올리면서 실속을 차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당사자이면서도 언제까지 국외자의 입장에 서 있어야만 하는지
그저 답답할 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