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이란 낱말의 뜻을 우리말사전에서 찾아보면 "생각을 얽어 놓음. 또는
그 얽어놓은 생각"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소설가가 작품의 틀을 짜는 플롯
이라는 말과 같이 쓰인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정치 지도자에게 자주 사용된다. 특히 정치적인
격변기에 자주 쓰이게 된다. 흔히 정치인의 이름을 따서 "이민우구상"이라고
부르거나 지명을 따서 "거제도구상"또는 구상내용에 따라서 "상왕구상"
등으로 불리게 된다.

정치지도자의 구상은 대개 정치활동의 본고장을 떠나 외지에서 이루어
진다.

그들이 정치무대가 아닌 외지에서 정치구상을 하게되는 이유는 몇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정보의 차단에 있을것 같다. 서울 등 정치중심에서는 너무나 많은
정보가 밀려오기 때문에 정보를 정리 분석할 물리적 여건이 되지 않는다.

정치구상이란 정보를 치밀하게 정리 분석하여 앞으로의 정치 시나리오를
작성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기존 정보를 토대로 혼자 심사숙고할 수 있는 환경과
시간이다. 다른 하나는 외지가 정치구상을 발표할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주목받는 정치지도자가 자리를 옮겨 숙려를 한다는 것은 사실은 국민의
시선이 쏠리기에 충분한 무대가 되는셈이다.

그래서 정치 지도자가 현지나 또는 귀경하며 그의 생각을 밝히게 되면
국민의 관심을 끌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령 5공말기인 86년 12월에 신민당의 이민우총재(당시)가 대통령직선재
라는 당론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조치가 이루어 진다면 내각책임제 개헌을
협상할 용의 있다"는 소위 "이민우구상"을 발표한것이나 이를 받아 87년1월
에 김영삼고문이 "거제도구상"으로 "이민우구상"을 백지화시킨 것은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생생하다.

또 임기 말을 앞둔 전두환대통령이 스스로 원로회의 의장이 되고 민정당
명예총재가 되려는 "상황구상"도 우리정치사에 한 획을 그을수 있는 중요한
정치적인 시나리오 였다.

또 국가적으로 작년 11월 김영삼대통령이 호주 "시드니"에서 밝힌 "세계화
장기구상"은 정부기구의 대폭 축소를 비롯하여 우리 경제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된다.

이같이 정치지도자의 구상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을 만큼 영향력이 큰
것이다.

지난 12일에 민주당의 이기택대표는 재주도로,김대중아태재단 이사장은
괌섬으로 떠났다.

정가의 관심은 그들의 "재주도구상"과 "괌도구상"에 쏠려있는 모양이다.

그들이 어떤 결론을 내리고 귀경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구상이 되기를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