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라는 말은 아니오. 현은 중앙정부 지배하의 지방 행정조직임엔
틀림없소. 그러나 중앙정부라고 해서 현에 대하여 무슨 일이든지
마음대로 할수는 없다고 생각하오. 현에도 특수한 사정이 있을수
있으니, 그 사정을 참작해야된다 그거요. 그런 특수 사정을 참작하지
않은 부당한 조치는 따를 수가 없다는 말이오"

"도대체 특수 사정이라는게 뭡니까?" 다시 총기제조소 소장이 물었다.

"아까도 얘길 했잖소. 무기 제작 문제는 역사적으로 우리 가고시마와
뿌리깊은 관계가 있다 그거요. 그런데 그 일까지 중앙정부에서 마음대로
한다는 것은 지나친 처사요.

난데없이 왜 이곳에서 만들어져 이곳에 보관되어 있는 무기와 탄약을
오사카로 옮기겠다는 거요? 부당한 일이 아닐수 없소"

"그럼 정부의 명령을 거절하겠다는 것입니까?" 오야마 지사는 좀
생각하는 듯하더니 대답했다.

"거절한다기 보다도 중앙정부에 탄원서를 낼까 하오. 무기와 탄약을
옮겨가지 말도록 말이오. 그러니까 탄원서에 대한 회신이 올때까지
그 일을 보류하고, 기다려주기 바라오"

그러자 젊은 소위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안됩니다. 기다릴 수가 없어요"

"왜 기달릴 수가 없소?"

"조속한 시일내에 무기와 탄약 이송을 완료하라는 명령을 받고 왔기
때문입니다. 나는 상부의 명령에 따를 뿐이지요"

"그럼 당장 그 일에 착수하겠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음-" 오야마는 날카로운 눈길로 소위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용무 마치고 갑니다" 노려보는 지사에게 소위는 척 거수경례를 붙이고
돌아섰다.

총기제조소 소장도 가볍게 거수경례를 하고는 소위와 함께 나가버렸다.

그날밤 기리노의 집에 시노하라와 무라다가 찾아와 세사람은 차를
마시며 밀담을 나누었다.

오야마 지사로부터 무기와 탄약 이송에 관한 정보를 전달받았던
것이다.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소. 절대로." 기리노의 말에 시노하라는
서슴없이 제안했다.

"화약고를 습격해서 병기와 탄약을 탈취해야 하오. 그 방법밖에 달리
무슨 수가 있겠소. 안 그렇소?"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