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상 끝까지"는 "파리 텍사스"의 감독 빔 밴더스가 91년에 찍은
영화다.

국내에 소개될 아시아판은 2시간짜리지만 원작은 3백60분에 달하는
대작이다.

촬영지도 모스크바에서 호주의 외딴 원주민부락까지 지구촌 곳곳을 누빈
방대한 스케일의 로드무비이다.

이에 비하면 로스앤젤레스와 휴스턴 ,멕시코의 모자브사막을 오간
"파리 텍사스"의 규모는 보잘것 없다.

그러나 이 영화는 많은 관객을 울렸다.

현대인의 소외와 대화단절"이란 메시지가 보는이들의 가슴을 적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세상 끝까지"를 보고 우는 관객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단지 혼란스럽기만 할지 모른다.

6시간짜리 영화를 2시간으로 줄여놓은 탓도 있겠지만 한편의 영화속에서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하려던 의욕과잉이 오히려 아무것도 전하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영화의 배경은 컴퓨터가 사립탐정의 역할까지 대신하는 1999년의
미래사회. 인도의 핵인공위성이 고장나 지상에 추락할 위험에 처하자
전세계는 불안에 휩싸인다.

자유분방한 20대여인 클레어(솔베이지 도마르땡)는 우연히 은행강도들의
돈을 파리에 갖다주다가 "슬픈눈의 사나이" 트레버(윌리엄 허트)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트레버의 본명은 샘 파버. 그는 산업스파이,FBI,일본마피아의 추적을
받으며 과학자인 아버지 헨리(막스 폰 시도우)의 엄청난 실험을 위해
세계각국을 휘젓고 다닌다.

그 실험이란 맹인인 어머니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특수카메라에 친척들의 모습을 담는 것이다.

클레어는 샘을 만나기 위해 모스크바의 뒷골목에서 도쿄의 캡슐호텔까지
찾아간다.

마침내 아버지의 연구소가 있는 호주의 원주민부락에 도착한 이들은
뇌파전달을 통해 어머니가 화면을 볼수 있게 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실험의 부작용으로 어머니가 숨진 뒤 세사람은 꿈을 비롯한
무의식의 세계까지 화면으로 재현해내는 실험에 탐닉한다.

"프로이드, 융도 이런건 몰랐을걸"이라고 비웃으면서. 빔 밴더스가
너무 앞서가는 것인지 우리가 뒤쳐진 것인지 파악하는 것은 관객
각자의 몫이다.

(31일 연강홀 개봉)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