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영 < 미 하워드대 교수/경제학 >

정부는 국제경쟁력을 향상시키려는 목적으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제시
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주요 사항중 하나는 현존하는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통합하여 재정경제원을 창설하고 정부의 지출, 세입과 금융정책을 관장
하도록 한다는 겻이다.

이경우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금융정책을 자율적으로 운용할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의 구축이 선결과제임을 뒷받침할수 있는 몇가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한국은 40여년의 짧은 기간내에 후진개발국 경제에서 선진경제로 성공적
으로 도달하였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 경제의 고도성장은 경제기획원을 기점으로한 정부주도적인 경제정책에
힘입은바 크다는 것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기부터 정부주도경제정책이 지속될경우 우리 경제의
진로에 많은 부작용이 발생될수 있다는 것이 국내외경제의 움직임 속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경제의 규모가 커지고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정부주도적인 경제정책
의 운용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세계경제의 환경변화가 진행됨에 따라 정부주도경제운용의 한계는 과거보다
분명하면서도 크게 나타나고 있다.

이점을 인식하고 김영삼정부는 경제의 국제화를 시도하였고 최근에 와서
경제의 세계화를 시도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경제의 세계화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획일적으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경제가 자율을 기반으로하여 정부 기업및 개인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선진국경제의 운용형태를 갖추도록 하는 것으로 보면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담고 있는 내용이 우리경제의 세계화를 추진하기
위한 조치라고 보는게 마땅하다.

따라서 정부조직개편이 적절한 것인가의 여부를 개편된 정부조직이 자율을
기반으로한 세계화에 도움을 줄 것인가의 안목에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재정경제원은 정부의 지출 세입및 금융을 관장하게 되어 있으므로 재정
경제원이 정부의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을 총괄하여 집행하는 거대조직이
되는 것만은 틀림없다.

정부의 한 부처가 그와 같은 막대한 권한과 책임을 가질때 바람직스럽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게 되어 있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금융정책이 재정경제원의 관할사항에서 분리되어야
할것이다.

그 이유로 첫째 과거 경제기획원이 예산을 관리하고 재무부가 세입과 금융
을 관리하여 두 부처간에 상호 견제하는 역할이 있었지만 정부가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을 모두 관장하고 있었다.

이것은 정부가 국가경제를 주도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다.

이 경우 금융정책은 정부의 세입정책과 같이 정부지출정책을 지원하여
주는 정책에 불과하고 한국은행과 민간시중은행은 신용공급창구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가격의 신호에 따라 움직이는 시장경제에서는 정부의 지출과 세입을 주관
으로 한 재정정책과 통화량과 이자율을 주관하는 금융정책의 상호견제가
매우 중요하다.

금융정책이 재정정책과 분권된 기관에서 실행될때 경제정책의 실패를
방지하고 거시경제의 안정기반이 형성되게 된다.

또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이루어지고 이에따라 우리경제의 경쟁력도
강화되는 것이다.

이것은 선진국의 경험에서 증명된 사실이다.

둘째 재정경제원이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을 동시에 관장할때 특수 이해집단
의 로비활동이 과거보다 쉬워지게 되고 따라서 경제정책이 소수 이해집단의
이해에 좌우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정부의 정책이 국민 대다수의 이해를 반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실제 운용면에서는 강한 이해집단의 이해에 정부정책
이 좌우될 소지가 많다.

언론기관이 강하고 여론을 중요시하는 미국에서도 이러한 사례를 쉽게
찾아 볼수 있다.

국민전체의 이해와 특수 이해집단의 이해가 조화되는 것은 정치적 측면에서
바람직한 면도 있으나 어느 한 기관이 재정.금융정책을 통합 관장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

셋째 재정경제원이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을 함께 수행할때 정부가 경제의
흐름을 보다 쉽게 간섭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할수 있을 것이다.

이와같은 지적은 경제의 자율화를 통해 세계화를 이룩하려는 정부의 근본
정책과 배치되는 것이다.

경제흐름의 조정은 직접적인 간섭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간접적인
수단의 운용을 통해 보여준 가격의 신호에 따라 자율적으로 기업과 개인의
선택에 의하여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금융정책이 자율적으로 움직일때 국민의 신뢰를 얻게 되며 정부가 의도하는
경제의 흐름조정도 보다 낮은 비용으로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넷째 우리경제는 상품시장개방을 끝맺고 멀지않아 자본 금융시장도 개방될
전망이며 외국인의 국내 금융시장참여와 한국인의 해외금융시장진입이 허용
되는 단계에 있다.

우리경제의 금융시장과 해외금융시장이 상호직결된 상태에서 통화량
이자율과 환율의 적절한 관리는 결코 쉬운 과제는 아니다.

금융정책에 전념하는 전문기관이 시기에 맞게 정책을 운용하도록 해도
적절한 금융정책이 시행되기 어려운 것이다.

정치적 상황에 민감할수 밖에 없는 행정조직이 금융정책을 제대로 관리할
능력을 갖는다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국은행이 금융정책을 자율적으로 운용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구축
되어야 한다.

더불어 현재의 한국은행 내부조직이 중앙은행의 조직으로서는 다소 문제가
있다는 것도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은행이 금융정책을 주관하는 기구가 될때 정책수립과 집행에 직접적
으로 필요한 업무이외의 업무를 담당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즉 은행예금자의 보호와 금융정책 수행상 필요한 범위내에서의 시중은행에
대한 감독권은 존속시켜야 하겠지만 정부의 국고 회계관리업무는 시중은행에
위임시키는등 중앙은행의 기능을 세계화추세에 알맞게 조정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시중은행의 여신과 금리에 관련된 경영활동은 은행이 자기책임하에
영위할수 있도록 은행의 자율경영권을 최대한 보장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도록 한국은행 조직법을 개정함으로써 한국은행의 독립과 더불어
시중은행들의 자율경영체제가 구축되고 그것을 근간으로 금융산업의 경쟁력
도 강화될수 있을 것이다.

자율적 운영이 보장된 한국은행의 변신은 개혁과 변화속에서 우리경제가
추구하고 있는 국가경쟁력 강화와 세계화를 보다 확실하게 달성할수 있게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