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판에는 가로 세로 각각 19줄의 선이 교차해 이루어진 361개의
점(로)이 있다.

"현현기경"의 설명을 보면 점가운데 눈은 하늘 (천원)을 상징하는 것이고
360이라는 수는 1년을, 네귀퉁이는 춘하추동을 나타낸 것이며, 4면
가장자리의 눈의 합계가 72개인 것은 72절후를 뜻하는 것이다.

한편 바둑돌이 흑백인 것은 음과 양을, 바둑판이 방형인 것은 정과 동을
상징한 것이라고 한다.

톨스토이도 "훼스가 과학이라면 바둑은 철학"이라고 했다지만 좁은 바둑판
위에 천지음양정이라는 동양의 철리와 인생의 오묘함, 처세의 교훈까지
담겨 있는 셈이다.

이쯤되면 바둑이 풍진을 털어내고 은둔의 경지에 몰입하게 한다해서
"좌은"이라고 불렀다는 것도 이해할만하다.

예부터 중국에서는 군자가 갖추어야 할 사예로서 금 기 서 화를 강조해
왔다.

그만큼 바둑은 교양의 바탕이 되는 청희로 대접받았다.

5,300여년전 중국의 요순시대에 등장했다는 바둑이 한국에 전해진 것은
삼국시대였다.

고려를 거쳐 조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바둑의 명수들이 남긴 일화는
헤아릴수 없이 많다.

특히 임진왜란때 명재상인 서애 유성용은 바둑의 명수여서 명장 이여송과
선조와의 대국에 훈수를 두어 거들먹대는 이여송의 콧대를 꺾어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당시 왜장 토요토미 히데요사(풍신수길)와 이순신등 임난의 주역들이
모두 바둑의 명수였다는 것은 퍽 흥미있는 일이다.

바둑이 언제부터 남성들의 전유물이 돼버린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1000년전만 해도 바둑은 남성들만의 "도끼자루 썩는줄 모르는 도락"
(란가문락)은 아니었던듯 싶다.

당나라 현종때 바둑의 최고명수로서 오늘날도 기가의 십계명처럼 지켜지고
있는 "위기십결"을 남긴 왕적신도 여인들이 수담하는 것을 듣고 그들에게
배워 대성했다고 한다.

제1회 보해컵세계여자바둑선수권대회가 한국경제신문사와 한국방송공사
주최로 23일 한국기원에서 개막됐다.

한 중 미 홍콩등 5개국 정상의 여류프로기사 16명이 출전한 국제여류프로
기전이다.

세계최초의 여류프로기사 9단인 루이나이웨이가 중국대표로 최근 한국인과
결혼한 황염이 한국대표로 참가해 관심을 모은다.

이 대회가 단순히 "두뇌스포츠"의 차원을 넘어 1,000만 한국 바둑애호가들
에게 삶의 정석과 정도를 보여주고 한국여류기단의 발전을 몰아오는 촉매가
되기를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