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박영배 특파원] 지난달 텍사스 오스틴의 반도체 관민공동연구기관인
세마테크( SEMATECH )에 모인 업체대표들은 가벼운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업체대표들은 이곳에서의 연구개발이 반도체업계의 생산성 향상과 기술
혁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자체평가를 내리고 오는 97년부터 홀로서기
를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연간 1억달러에 이르는 정부보조금을 받지 않겠다는 얘기다. 이는 곳
세계 반도체시장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는 상징적인 의미이기도 하다.

세마테크는 지난87년 정부와 업계가 공동출연해 만든 연구소이다.

당시 세계 반도체시장은 일본이 장악하면서 무적함대를 방불케하는
기세로 뻗어 나갔다.

80년대초만해도 미국이 57%이상 시장점유율을 유지했으나 85년이후에는
일본에 50%이상의 시장을 내주어야 했다.

이에 놀란 업계는 자구책으로 정부를 설득,양측이 50%씩을 출연하는
조건으로 연구소를 세웠다. 물론 일본을 능가할 때까지라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

따라서 이 연구소에는 직접적 이해 당사자인 인텔,텍사스 인스프,루먼츠,
모토롤라,IBM,내쇼날 세미컨덕터등 대표적인 반도체기업 11개사가
한마음으로 참여했다.

7년간에 걸친 업계와 정부의 노력은 결실을 보아 지난해는 미국의
점유율(41.9%)이 일본(41.4%)을 눌렀고 올부터는 "굳히기"에 들어갔다.

정부로부터는 전략산업으로 지정받는 혜택까지 누리고 있다.

이에따라 정부는 지난3월 백악관의 주도로 반도체 기술위원회
(SEMICON-DOCTOR TECHNOLOGY COUNCIN )를 설립,정부와 업계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연구개발사업을 주관토록 했다.

또 4월말에는 FPT( FLAT PANEL DISPLAY )산업지원 명목으로 10억달러를
투입하는 결정을 내렸다.

특히 미정부는 지금까지 지원해온 연구개발외에 제품공장의 건설및
마케팅까지도 정부지원 영역으로 설정하겠다고 나서 관련국들을 긴장
시키고 있다.

당사자인 업계의 움직임은 더욱 기민하다.

메모리 업체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데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다른 업체와 제휴하는게 특징이다.

생산기지도 소비잠재력이 있는 해외로 다변화시키고 있다.

조사연구기관인 데이터 퀘스프에 따르면 미국제휴기업의 절반이상이
외국회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분야별로는 주로 메모리 마이크로 컴포넌트 주문형 반도체등이 주종을
이루며 지역별로는 일본 유럽 아시아순이다.

텍사스 인스트루먼츠는 대만의 에이서사와 월 2만장의 8인치 웨이퍼를
생산키로 이미 합의를 보았고 포루투갈에서는 삼성과 합작,메모리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다.

텍세마이 컨덕터사와 함께 싱가포르에 건설한 공장은 가동준비에
한창이다. 월생산능력은 8인치 웨이퍼 9천장이다.

이밖에도 텍사스 인스트루먼츠는 일본 이탈리아등지에 공장을 갖고
세계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IBM도 프랑스의 에소네와 일본의 야쓰에 생산공장을 갖고 8인치 웨이퍼
4만장,6인치 웨이퍼 3만장을 각각 만들어 내고 있다.

1메가 D램이하만 생산해온 모토롤라도 도시바와 손잡고 9억달러를
투자,오는 96년부터 8인치 웨이퍼 2만장을 출하할 계획이다.

플래쉬 메모리,16메가 D램 생산도 계획하고 있다.

마이크론 테크놀러지는 경쟁력있는 제품공급을 모토로 내걸고 모든
구매자들이 원하는 품목을 개발한다는 원칙아래 움직이고 있다.

이를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해외에서 제휴선을 찾고 있다.

업체들이 이처럼 발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장래의 시장성이 밝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앞으로도 엔고가 지속되고 미국과의 협약으로 일본시장이
20%까지는 개방돼 있어 반도체의 가격경쟁력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미국의 연간 반도체수요가 15%대의 높은 성장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일상용품에서 전자와 컴퓨터기술의 채용이 늘어 반도체의 사용
영역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수퍼 하이웨이사업도 반도체수요를
신장시키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장기적인 반도체 시장전망도 밝다.

데이터 퀘스트등 유명조사기관의 수치를 보면 97년에는 세계 반도체시장
규모가 1천1백억달러,2000년에는 1천6백억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낙관적인 견해에 VLSI리서치사의 허친슨회장은 이의를 제기한다.

조심스럽게 하향세를 점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에서의 이자율상승으로 투자여력 감소,차세대 컴퓨터
운용시스템인 위도우95의 출하지연으로 컴퓨터칩및 관련부품의 수요감소,
퍼스널 컴퓨터의 생산에 따른 새로운 컴퓨터칩의 수요창출 지연이 허친슨
회장이 내다본 미반도체업계의 어두운 측면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