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동네 개울가에 놓여있던 징검다리는 참 앙징스러웠다.

그냥 건너가기에는 치마가 젖을 것같고 그렇다고 성수대교와 같은 큰
다리를 놓기에는 무리인 수심이 얕은 곳에 징검다리는 놓여 있었다.

학교나 도회지로 나갈 때 우리는 이 돌다리들을 건너지 않으면 안되었고,
방과후엔 멱도 감고 올챙이도 잡았던 놀이터가 또한 징검다리 주변이었다.

세월이 지나간 자국- 그 돌들 하나 하나는 강물과 바람과 동네사람들의
자취로 인해 유난히 반질거렸고 적당히 패여 있었다.

한번은 친구들과 징검다리를 건너다가 갑자기 짖궂은 남정네들이 달려
오면서 우리를 미치는 바람에 옷을 다 버리기도 하였다.

그만큼 징검다리는 둘이 걷기엔 비좁고 한 개를 건너 뛰기엔 폭이
넓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징검다리는 아스라히 향수를 몰고 오는 구름같은
것이지만, 한편으론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명쾌하게 대변해
주는 듯 하다.

사다리는 계단들로 구성되어 있듯이 글을 쓰는 데도 기승전결의 과정이
필요하다.

음악 애호가라면 동요에서 가곡,그리고 가벼운 클래식 음악등의 묘미를
감상하는 순서를 거치게 된다.

물론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놀라운 결과를 거두는 이도 있을
성싶다.

흔히들 천재나 운수대통한 자들 말이다.

특히 경제구조나 생활환경이 급변하는 요즘같은 세상은 적지않은
"돌연변이"들을 양산하고 있다.

시간과 땀과 번민없이 얻어진 부나 명성이 과연 얼마나 오래 갈까?
그 뒤안길에는 징검다리에서 밀쳐진 타인들의 고통이 있지 않을까?

졸속으로 이루어진 모든 것은 그 생명력이 오래갈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거나,오히려 불굴의
투지로 운명을 극복하는 인간승리의 모급에서 깊이 감동하지 않던가.

그래서 나는 때때로 삶이 고달퍼질때 지나온 징검다리를 헤아려 보고
내 앞에 놓여진 징검다리를 천천히 두드려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