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9일 발표할 남북경협완화조치는 내용도 중요하겠지만 북한핵문제로
그간 단절됐고 사실상 적대시했던 남북관계의 복원을 우리측이 주도한다는
정치적 의미가 더욱 돋보이고 있다.

이번 조치는 그간 경협을 포함한 모든 남북간 접촉을 북한핵문제와 연계
했던 "핵우선 대북정책"의 수정을 뜻한다는 점에서 남북관계전반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남북한은 지난 88년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밝힌 7.7선언에 따라 물자
교역과 경협추진을 시작으로 경제관계를 정상가동<>남포공단 시범사업실시
<>설악산과 금강산 연계 관광사업추진등 각종 협력사업의 타당성조사에
착수,일부 사업의 경우 어느정도 추진실적을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92년10월의 "조선노동당 간첩단사건"과 팀스피리트훈련 재개 선언,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겹치면서 남북경협은 일시에 중단됐다.

북한이 경제활성화를 위해 남측의 대북투자를 희망했지만 정부는 핵
투명성을 보장하지 않는한 경협을 재개할 수 없다면서 현실적인 압력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이번 조치는 경협문제를 더 이상 대북 압력 수단으로 사용
하지 않고 남북관계 개선의 축으로 활용하겠다는 남한당국의 의지를 대내외
에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이와관련,"이번 조치는 북한핵문제가 타결국면에
들어선 것이 분명한 기초"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다른 나라에는 경제협력을 강조하면서 남북간에 협력이 이루어
지지 않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며 남북관계를 적극적으로 풀어나가자는
정부의 의지가 담겨져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사실 정부가 이번에 취할 조치는 경협의 기초적인 단계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북한의 대응여하에 따라 그 범위와 수준은 얼마던지 상향 조정될
수 있으며 이번 조치는 막힌 "물꼬"를 튼다는 점에서 정부는 의미부여를
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같은 정부의 조치에 대해 북한이 어떤 반응을 나타내느냐 하는
데 모아지고 있다. 경협은 글자 그대로 쌍방이 힘을 합할 때 의미가 있는
때문이다. 현재 상태에서 평양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

북한의 경제 테코노크라트들은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다소의 부작용이 있다 하더라도 남북경협에 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미 대미협상에서 나타난대로 군부등 강경파들은 반대입장이
분명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남한의 인력,물자의 유입을 기정사실화하는 경협이 경제적 이익은 담보할지
모르지만 체제자체가 도전을 받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번 조치발표후 전망과 관련,"북한은 일단 크게
고맙다고 하지도 않을 것이나 그렇다고 거부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만큼 그들의 경제사정이 남한과의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판단
에서다.

북한은 이번 조치의 하나인 기업인 방북과 관련,그들이 필요하며 유리
하다고 판단되는 기업과 관련인사만 선별수용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

남한당국이 아무리 조건없는 경협을 강조한다해도 이같은 그들의 정책이
남한 당국에 의해 언제까지 허용될 것인가 하는 점은 의문으로 남는다.

남북경협 완화조치는 어쨌든 북한핵 특히 김일성사후 엄청난 경색국면에
빠져 있던 남북관계에 숨통을 트이는 한편 사회 체육 문화등 다른 분야의
교류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은 충분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제네바회담에서 아직 원칙만 타결되었을 뿐 핵문제해결에 따른
가시적 조치가 나오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북한에 대해
손을 내밀었다.

남북관계의 정상화차원에서 북한의 화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 양승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