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한담] 체제우월성 확보해야 통일 앞당겨..이상돈 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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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북.미회담의 타결로 북한핵문제가 일단락됐다.
남북한내부문제로 다소 시일이 걸리겠지만 조만간 남북대화가 재개될
전망이다.
경수로지원 대체에너지 공급문제가 걸려있고 김일성사망으로 연기된 정상
회담개최 남북경협문제등으로 대화재개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언론인출신(동아일보)으로 제헌.5.6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상돈통일원고문
(82)을 종로구 통의동 제헌동지회관으로 찾았다.
-지난21일 북.미회담이 타결됐는데 합의문내용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이고문 =어느정도 우리정부의 의견이 반영되긴 했지만 공개되지 않은
부속합의서 내용이 궁금합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이 뒤로 밀려 합의내용을 북한이 이행 안하면
어떻게 할것이냐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그간의 경험으로 볼때 너무 밝게 전망하거나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북.미회담 타결로 멀지않아 남북대화가 재개될 전망인데 이번엔 잘 될것
같은지요.
<> 이고문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직후 독일과 동구권을 둘러보았습니다.
독일통일은 교류덕분에 이뤄졌습니다.
서신왕래 언론.통신교류등이 통일되기 3년전부터 됐다고 합니다. 북한은
김일성교로 잠들어 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동면상태인 북한을 자연스럽게 깨워야 합니다.
안일하게 봐서는 안됩니다.
냉정하게 생각하고 서두르지 말아야 합니다. 공산당과의 협상은 앉아서
회담하고 도장찍어서 되는것이 아닙니다.
회담으로 미군철수시키고 힘으로 통일하려던게 6.25입니다. 원칙을 지닌
당당한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통일은 어떤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보며 언제쯤 가능할 것으로 전망
하십니까.
<> 이고문 =통일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못살게 되더라도 무조건
통일해야 한다는데는 반대합니다.
지금보다 잘사는 통일이 돼야합니다. 통일은 국민이 굳게 단결하고 경제와
체제상 우월성을 확보해야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장기적으로 인적 물적 교류를 계속하고 체제우위의
실효를 거두는데 주력하는 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길입니다.
-흡수통일에 대비해야 한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은데..
<> 이고문 =지금 무너지는 것은 곤란합니다. 감당할수 있겠느냐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수백만명이 남쪽으로 내려온다면 어떻게 수용하겠습니까. 민족공동체로서의
열망인 통일에 대비해 착실히 준비해야 합니다.
내심으로는 일본 중국도 우리의 통일을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외교력을 발휘해 주변국들을 설득하고 내치에 힘써 독일식의 흡수통일에도
대비해 나가야 하겠지요.
요즈음 지존파등이 날뛰고 성수대교가 붕괴되는등 사회가 시끄러운데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모두가 대오각성해야 합니다.
-어처구니 없는 사건 사고가 잇따르다 보니 문민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는데..
<> 이고문 =그렇다고해서 문민정부를 탓해서는 곤란합니다.
또다시 군사정부가 오면 우리나라는 완전히 망합니다.
군사정권으로 잘된 나라가 없습니다.
명령 효율만으로는 나라가 안됩니다.
어떻게 해서 세운 문민정부인데 문민정부가 잘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최근엔 세력이 많이 약화되긴 했지만 주사파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 이고문 =소위 주체사상이라는 것은 주의도 철학 이념도 아닙니다.
6.25때 범죄행위를 보면 한심합니다.
6.25때 군인 28만명과 군인아닌 민간인 1백만명이 사망했습니다.
북한에서는 2백만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인간의 본성, 휴머니즘이 없습니다.
먼저 인간이 돼야 합니다.
6.25때 한민당은 잡히면 죽는다고 전부 피란가서 별 피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좌우합작파는 남아 있다가 대부분 숙청되고 말았습니다.
-평생 야당하신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통일원고문이 되셨습니까.
<> 이고문 =여소야대시절에 김대중씨가 추천해서 됐는데 김영삼대통령이
재임명해서 89년부터 하게됐지요.
두달에 한번 회의를 하고 외국이나 국내시찰기회도 제공합니다.
한번은 회의에서 북한은 우리와 대화할때 "민주화하라" "국가보안법 폐지
하라" "팀스피리트 중지하라"고 조건을 내거는데 우리는 왜 끌려다니는
인상만 주느냐고 따졌지요.
6.25전쟁을 도발한 책임을 먼저 사과해야 한다고 당당히 주장하라고
권했지요.
-러시아 비밀문서가 공개돼 북의 남침이 확인됐지만 한때 대학가에선
북침설이 나돌기도 했지 않습니까.
<> 이고문 =언젠가 대학교수들의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석했는데 한심하게도
한시간반동안을 6.25전쟁이 남침이냐 북침이냐를 따집디다.
그래서 우리가 만약 북침을 했다면 어떻게 6월27일 서울이 함락되고
7월20일에 대전이 함락됐느냐고 말했습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일진일퇴가 있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자다가 벼락을 맞은 셈인데 무슨 북침이냐는 말입니다.
6.25를 겪지 않은 전후세대가 늘어나고 우리정부가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했는지는 몰라도 전쟁책임을 북한에 묻지 않고 덮어두었던데도
문제가 있습니다.
-제헌을 포함, 3선의원이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의정활동은 어떤
것인지요.
<> 이고문 =제헌의회때 국가공무원법을 개정한 것을 들수 있지요.
국회는 친일파들의 입후보를 제한해 정부로 친일파들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이들의 농간으로 공무원령에 3급공무원갑류는 5년의 전직경력, 3급을류는
2년의 경력이 있어야 임용되도록 규정돼 있었습니다.
조선총독부관리를 지내지 않고는 이를 충족시킬 길이 없도록 만든것이지요.
이같은 불합리한 점을 시정해야 한다고 모두가 통감하면서도 감히 이를
개정하겠다고 나서는 의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것을 고치자고 제안해 경력연수규정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지요.
-관료를 자극하는 공무원법개정엔 어려움이 많았을것 같은데요.
<> 이고문 =제헌의회는 임기가 2년이었는데 다들 2대국회에 당선되고 나서
추진하자는 의견이었습니다.
관리들을 건드려 놓고는 선거치르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와세다대학 1년후배이던 허남수의사국장과 상의해 긴급동의로
상정해 전격 처리하기로 했지요.
제안설명을 하고 무기명비밀투표로 처리하도록해서 가75 부14 기권16표로
통과됐고 이승만대통령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공포했습니다.
임용과 퇴직금과는 관계가 없는데도 관리들은 경력연수를 계산치않는것은
퇴직금 못받도록 하는 것이라고 선동하더군요.
-동아일보기자는 어떻게 하게 됐고 얼마나 했는지요.
<> 이고문 =대학졸업하기전 도쿄에서 송진우선생을 만났는데 뭐할거냐,
언론사에서 일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권유를 받았고 겨울방학때 송선생댁으로
가서 입사하기로 했지요.
일체 입다물고 있다가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서울로 와버렸더니 나를
담당하던 시부야형사가 나를 놓쳐서 혼났다고 합디다.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문닫을 때까지 1년반동안 기자생활을 했는데 40년
8월10일 문닫는 날을 알리기 위해 가십란이던 "응접실"에 여러분과 만나던
응접실문을 닫게 됐다고 썼더니 총독부 검열에서 삭제당해 결국 알리지
못했지요.
당시엔 논설위원이 없어 편집국장이 지명하면 기자들이 사설도 썼지요.
-그이후 해방될 때까지 무얼하며 지내셨습니까.
<> 이고문 =놀고 있다가 천일제약에 가서 2년간 일했고 자영업도 해
봤습니다.
천일제약은 당시 유한양행 조선무약과 함께 유명한 약방이었는데 휘문고보
동기인 조홍섭전무가 일좀 봐달라고 해서 가게 됐지요.
처음엔 초근목피로 고약이나 만드는 일을 어떻게 하느냐, 못간다고 하다가
주위에서 거기라도 안나가면 감옥가기 쉽다고해서 서무과장겸 선전부장으로
일했지요.
쌀한가마 8원할때 월급80원을 받았지요.
기자때는 60원을 받았구요.
-청거라는 아호를 쓰게된 사연이 있는지요.
<> 이고문 =제헌의원때 나보다 15년 연장인 송필만박사와 강연을 다니다
여관방에서 자게됐는데 이군이라고 하기도 뭣하다면서 아호가 있느냐고
묻더군요.
송박사가 청구지 거사라며 청거라는 호를 지어주었습니다.
인촌 김성수선생도 말년을 청년처럼 살라는 의미로도 볼수 있으니 좋다고
하더군요.
-좌우명도 소개해 주시지요.
<> 이고문 =논어의 불원천 불우인이 좌우명입니다.
사회와 시대가 내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늘을 원망치 않고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고 나자신을 반성하고 노력하라는 뜻이지요.
생활신조는 악이불음하고 애이불상하라는 것으로 즐거울때 음하지 말고
슬퍼하되 맘을 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아호 때문인지 도저히 여든 넘은분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 이고문 =저녁8시반이나 9시면 자고 새벽4시에 일어나 책보다가 날이
새기 시작하면 비오는날을 제외하고는 매일같이 북한산을 1시간20분정도
걷습니다.
91년에 와세다대학 한국동창회장을 맡아 작년에 와세다대학에 가서 연설을
했는데 54년전에 졸업했다고 하니까 입을 딱 벌립디다.
강연후에 내 팔다리를 만져보며 여든넘긴 사람이 이렇게 건강할수 있느냐고
감탄합디다.
< 대담 = 양정진 정치부장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30일자).
남북한내부문제로 다소 시일이 걸리겠지만 조만간 남북대화가 재개될
전망이다.
경수로지원 대체에너지 공급문제가 걸려있고 김일성사망으로 연기된 정상
회담개최 남북경협문제등으로 대화재개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언론인출신(동아일보)으로 제헌.5.6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상돈통일원고문
(82)을 종로구 통의동 제헌동지회관으로 찾았다.
-지난21일 북.미회담이 타결됐는데 합의문내용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이고문 =어느정도 우리정부의 의견이 반영되긴 했지만 공개되지 않은
부속합의서 내용이 궁금합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이 뒤로 밀려 합의내용을 북한이 이행 안하면
어떻게 할것이냐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그간의 경험으로 볼때 너무 밝게 전망하거나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북.미회담 타결로 멀지않아 남북대화가 재개될 전망인데 이번엔 잘 될것
같은지요.
<> 이고문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직후 독일과 동구권을 둘러보았습니다.
독일통일은 교류덕분에 이뤄졌습니다.
서신왕래 언론.통신교류등이 통일되기 3년전부터 됐다고 합니다. 북한은
김일성교로 잠들어 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동면상태인 북한을 자연스럽게 깨워야 합니다.
안일하게 봐서는 안됩니다.
냉정하게 생각하고 서두르지 말아야 합니다. 공산당과의 협상은 앉아서
회담하고 도장찍어서 되는것이 아닙니다.
회담으로 미군철수시키고 힘으로 통일하려던게 6.25입니다. 원칙을 지닌
당당한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통일은 어떤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보며 언제쯤 가능할 것으로 전망
하십니까.
<> 이고문 =통일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못살게 되더라도 무조건
통일해야 한다는데는 반대합니다.
지금보다 잘사는 통일이 돼야합니다. 통일은 국민이 굳게 단결하고 경제와
체제상 우월성을 확보해야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장기적으로 인적 물적 교류를 계속하고 체제우위의
실효를 거두는데 주력하는 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길입니다.
-흡수통일에 대비해야 한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은데..
<> 이고문 =지금 무너지는 것은 곤란합니다. 감당할수 있겠느냐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수백만명이 남쪽으로 내려온다면 어떻게 수용하겠습니까. 민족공동체로서의
열망인 통일에 대비해 착실히 준비해야 합니다.
내심으로는 일본 중국도 우리의 통일을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외교력을 발휘해 주변국들을 설득하고 내치에 힘써 독일식의 흡수통일에도
대비해 나가야 하겠지요.
요즈음 지존파등이 날뛰고 성수대교가 붕괴되는등 사회가 시끄러운데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모두가 대오각성해야 합니다.
-어처구니 없는 사건 사고가 잇따르다 보니 문민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는데..
<> 이고문 =그렇다고해서 문민정부를 탓해서는 곤란합니다.
또다시 군사정부가 오면 우리나라는 완전히 망합니다.
군사정권으로 잘된 나라가 없습니다.
명령 효율만으로는 나라가 안됩니다.
어떻게 해서 세운 문민정부인데 문민정부가 잘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최근엔 세력이 많이 약화되긴 했지만 주사파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 이고문 =소위 주체사상이라는 것은 주의도 철학 이념도 아닙니다.
6.25때 범죄행위를 보면 한심합니다.
6.25때 군인 28만명과 군인아닌 민간인 1백만명이 사망했습니다.
북한에서는 2백만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인간의 본성, 휴머니즘이 없습니다.
먼저 인간이 돼야 합니다.
6.25때 한민당은 잡히면 죽는다고 전부 피란가서 별 피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좌우합작파는 남아 있다가 대부분 숙청되고 말았습니다.
-평생 야당하신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통일원고문이 되셨습니까.
<> 이고문 =여소야대시절에 김대중씨가 추천해서 됐는데 김영삼대통령이
재임명해서 89년부터 하게됐지요.
두달에 한번 회의를 하고 외국이나 국내시찰기회도 제공합니다.
한번은 회의에서 북한은 우리와 대화할때 "민주화하라" "국가보안법 폐지
하라" "팀스피리트 중지하라"고 조건을 내거는데 우리는 왜 끌려다니는
인상만 주느냐고 따졌지요.
6.25전쟁을 도발한 책임을 먼저 사과해야 한다고 당당히 주장하라고
권했지요.
-러시아 비밀문서가 공개돼 북의 남침이 확인됐지만 한때 대학가에선
북침설이 나돌기도 했지 않습니까.
<> 이고문 =언젠가 대학교수들의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석했는데 한심하게도
한시간반동안을 6.25전쟁이 남침이냐 북침이냐를 따집디다.
그래서 우리가 만약 북침을 했다면 어떻게 6월27일 서울이 함락되고
7월20일에 대전이 함락됐느냐고 말했습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일진일퇴가 있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자다가 벼락을 맞은 셈인데 무슨 북침이냐는 말입니다.
6.25를 겪지 않은 전후세대가 늘어나고 우리정부가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했는지는 몰라도 전쟁책임을 북한에 묻지 않고 덮어두었던데도
문제가 있습니다.
-제헌을 포함, 3선의원이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의정활동은 어떤
것인지요.
<> 이고문 =제헌의회때 국가공무원법을 개정한 것을 들수 있지요.
국회는 친일파들의 입후보를 제한해 정부로 친일파들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이들의 농간으로 공무원령에 3급공무원갑류는 5년의 전직경력, 3급을류는
2년의 경력이 있어야 임용되도록 규정돼 있었습니다.
조선총독부관리를 지내지 않고는 이를 충족시킬 길이 없도록 만든것이지요.
이같은 불합리한 점을 시정해야 한다고 모두가 통감하면서도 감히 이를
개정하겠다고 나서는 의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것을 고치자고 제안해 경력연수규정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지요.
-관료를 자극하는 공무원법개정엔 어려움이 많았을것 같은데요.
<> 이고문 =제헌의회는 임기가 2년이었는데 다들 2대국회에 당선되고 나서
추진하자는 의견이었습니다.
관리들을 건드려 놓고는 선거치르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와세다대학 1년후배이던 허남수의사국장과 상의해 긴급동의로
상정해 전격 처리하기로 했지요.
제안설명을 하고 무기명비밀투표로 처리하도록해서 가75 부14 기권16표로
통과됐고 이승만대통령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공포했습니다.
임용과 퇴직금과는 관계가 없는데도 관리들은 경력연수를 계산치않는것은
퇴직금 못받도록 하는 것이라고 선동하더군요.
-동아일보기자는 어떻게 하게 됐고 얼마나 했는지요.
<> 이고문 =대학졸업하기전 도쿄에서 송진우선생을 만났는데 뭐할거냐,
언론사에서 일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권유를 받았고 겨울방학때 송선생댁으로
가서 입사하기로 했지요.
일체 입다물고 있다가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서울로 와버렸더니 나를
담당하던 시부야형사가 나를 놓쳐서 혼났다고 합디다.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문닫을 때까지 1년반동안 기자생활을 했는데 40년
8월10일 문닫는 날을 알리기 위해 가십란이던 "응접실"에 여러분과 만나던
응접실문을 닫게 됐다고 썼더니 총독부 검열에서 삭제당해 결국 알리지
못했지요.
당시엔 논설위원이 없어 편집국장이 지명하면 기자들이 사설도 썼지요.
-그이후 해방될 때까지 무얼하며 지내셨습니까.
<> 이고문 =놀고 있다가 천일제약에 가서 2년간 일했고 자영업도 해
봤습니다.
천일제약은 당시 유한양행 조선무약과 함께 유명한 약방이었는데 휘문고보
동기인 조홍섭전무가 일좀 봐달라고 해서 가게 됐지요.
처음엔 초근목피로 고약이나 만드는 일을 어떻게 하느냐, 못간다고 하다가
주위에서 거기라도 안나가면 감옥가기 쉽다고해서 서무과장겸 선전부장으로
일했지요.
쌀한가마 8원할때 월급80원을 받았지요.
기자때는 60원을 받았구요.
-청거라는 아호를 쓰게된 사연이 있는지요.
<> 이고문 =제헌의원때 나보다 15년 연장인 송필만박사와 강연을 다니다
여관방에서 자게됐는데 이군이라고 하기도 뭣하다면서 아호가 있느냐고
묻더군요.
송박사가 청구지 거사라며 청거라는 호를 지어주었습니다.
인촌 김성수선생도 말년을 청년처럼 살라는 의미로도 볼수 있으니 좋다고
하더군요.
-좌우명도 소개해 주시지요.
<> 이고문 =논어의 불원천 불우인이 좌우명입니다.
사회와 시대가 내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늘을 원망치 않고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고 나자신을 반성하고 노력하라는 뜻이지요.
생활신조는 악이불음하고 애이불상하라는 것으로 즐거울때 음하지 말고
슬퍼하되 맘을 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아호 때문인지 도저히 여든 넘은분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 이고문 =저녁8시반이나 9시면 자고 새벽4시에 일어나 책보다가 날이
새기 시작하면 비오는날을 제외하고는 매일같이 북한산을 1시간20분정도
걷습니다.
91년에 와세다대학 한국동창회장을 맡아 작년에 와세다대학에 가서 연설을
했는데 54년전에 졸업했다고 하니까 입을 딱 벌립디다.
강연후에 내 팔다리를 만져보며 여든넘긴 사람이 이렇게 건강할수 있느냐고
감탄합디다.
< 대담 = 양정진 정치부장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