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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수첩] 주사기 품귀에 벼랑끝 몰린 희소질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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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절 탓에 재사용까지 고려
    중증 재택환자 지원책 절실

    이지현 바이오헬스부 기자
    [취재수첩] 주사기 품귀에 벼랑끝 몰린 희소질환자들
    “아이 주사기랑 수액 줄을 계속 못 구할까봐 걱정이에요.”

    선천성 희소 질환인 코넬리아드랑게증후군을 앓는 아이의 엄마 A씨 말이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장기화하자 집에서 누워 지내는 아이를 돌보는 A씨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석유화학 원료 수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주사기, 수액 줄, 일회용 약병, 멸균 장갑 등을 구하는 게 힘들어져서다. 평소 주문하던 업체의 재고 소진으로 어렵게 다른 업체를 찾았는데, 언제 제품을 보내줄 수 있을지 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

    일선 병원은 정부가 집중 관리에 나선 뒤 공급 상황에 숨통이 트였다. 문제는 집에서 보살핌을 받는 중증 재택 환자다. 재택 환자 보호자들은 연일 ‘품절’ 안내글을 마주하고 있다. 오랜 기간 도매상 등과 거래해 온 병원과 달리 이들은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협상력이 없다.

    수시로 찾아오는 아이 경련을 가라앉히려 대마 오일을 먹일 땐 5㏄ 주사기가 필요하다. 영양관으로 수분을 보충할 땐 50㏄ 주사기를 쓴다. 100㏄ 약병도 이들에겐 항상 챙겨야 하는 필수품이다. 혼자 숨을 쉬지 못해 인공호흡기를 달고 사는 환자의 ‘숨길’을 터주는 석션 팁, 링거 등을 놓을 때 쓰는 수액 세트도 마찬가지다. 이런 물품을 제때 구하지 못해 알코올이나 물에 헹궈 재사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면역력이 약해진 환자가 일회용품을 다시 쓰면 매우 위험하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다.

    더욱이 일부 품목은 전쟁 전 공급이 원활할 때보다 가격이 5~10배가량 뛰었다. 오랜 투병 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경제적 부담까지 가중되고 있다. 아이나 가족이 아픈 게 내 탓인 것 같아 늘 ‘죄인’ 같은 기분으로 사는 보호자들이다. 공급망 문제 탓에 불안과 우울감이 심해져 일부 보호자는 불면증까지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희소 질환자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폐섬유증 환자의 가래를 없애주는 흡입 치료제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서만 공급받을 수 있는데 통상 신청 후 4~8주가량 걸리던 배송 기간이 전쟁 후 3개월까지 길어졌다. 매일 두 번 써야 하는 이 약이 없으면 환자 중증도가 높아져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희소 질환을 앓는 인구는 극소수다. 그만큼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일이 반복된다. 이번 의료용품 공급난에서도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최소한의 치료재료조차 구하지 못해 재사용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을 방치한다면 사회 안전망의 실패다. 가장 취약한 환자부터 지켜내는 게 정부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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