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시즌의 막이 올랐다.

매년 이맘때면 하반기 대졸사원취업전선이 형성되지만 금년에는 그 모습이
과거와 많이 다를 것으로 보인다.

신입사원 채용제도가 최근들어 유행하는 신인사제도와 맞물려 재조명되면서
"신인"을 뽑는 기준 자체가 격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신인사제도의 기치아래 연봉제 성과급 발탁인사등 철저한 능력
본위의 인사체계를 추구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신입사원 전형방식의 과감한
개혁도 단행하고 있는 것이다.

인사관리 변화추세를 민감하게 받아 들이는 삼성그룹등 일부 대기업그룹은
채용방식 자체를 크게 뜯어고쳐 새로 적용하고 있으며 예년방식을 계승하는
그룹들도 면접전형을 다양하게 치르는등 신입사원채용에서부터 신인사제도를
적용할 뜻을 전하고 있다.

우선 철저한 BI(Blind Interview.무자료 면접)를 표방하는 그룹이
잇따르고 있다.

BI란 면접위원의 선입관이 배제될수 있도록 응시자의 신상명세와 관계된
자료없이 면접평가를 내리는 것을 뜻한다.

학벌이나 지연등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신인사제도에서 뿌리내린 대표적인
인사채용방식가운데 하나이다.

이는 처음부터 "무"에서 시작해 응시자들의 잠재력만 잡아내 평가무대에
올림으로써 기업들이 "입문"단계부터 철저하게 신인사제도에 적합한 인력을
뽑아 들이겠다는 새 조류를 반영한다.

BI를 노골적으로 거론하거나 궁극적으로 BI의 효과를 내는 면접방식을
내세우는 그룹은 삼성그룹 현대그룹 코오롱그룹 한라그룹 한보그룹 진로
그룹 등이다.

삼성그룹은 먼저 입사지원서를 소정양식 단1통으로 간소화했다.

이 1통의 지원서에서도 사진부착을 폐지했다.

철저한 선입관 배제를 위해 지원서에서 응시자의 얼굴마저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면접위원들에게 제공돼 왔던 출신학교나 학점에 대한 정보도 차단된다.

대신 입사지원서에는 헌혈을 한 적이 있는지, 어떤 사회봉사활동을 했는지
를 묻는 란이 삽입된다.

이같은 전형방식의 변화를 통해 능력과 더불어 인간미와 도덕성도 함께
측정해 보겠다는 것이 삼성그룹이 새롭게 내놓은 신경영 채용방식이다.

현대그룹의 경우도 입사지원서를 종전의 2통에서 1통으로 간소화하고
계열사인 현대자동차가 지난상반기에 도입한 BI를 그룹 전체로 확산 강화
한다는 방침이다.

코오롱그룹은 각 계열사가 실정에 맞게 자율적으로 적절한 면접방식을
선정한다는 전제조건을 깔면서도 올해는 BI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라그룹은 올해부터 입사지원서에서 본적지나 대학교소재지(본교.분교등
구분)및 주.야간등의 기재를 생략함으로써 학벌이나 지연등이 채용과정에
끼어들 틈이 없도록 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한보그룹도 면접에서 출신학교나 출신지역등의 구분을 없앤 면접표를
금년에 처음으로 사용하겠다고 밝혀 BI의 냄새를 풍길 예정이다.

진로그룹도 면접대상자의 이름과 전공만을 가지고 평가하는 무자료면접을
도입할 예정이다.

이같은 BI 확산에 따라 취업희망자들이 면접에 응하는 자세도 크게
달라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관련, 럭키금성그룹의 인사관계자는 솔직한 자세와 자신감있는 목소리
가 선입관이 배제된 면접위원들에게 더 잘 먹혀들 것이라고 충고한다.

면접방식에서 또 하나의 변화는 중역일변도 평가에서 신입사원을 직접
통솔하게될 부서장들의 평가가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는 것이다.

미원그룹은 이번 채용부터 중역들은 조직적응력만 평가하고 담당부서장이
창의력과 도전의식을 점검하는등 다각적인 평가를 실시한다.

기아그룹은 면접에서 사회봉사활동여부가 중점적으로 체크되고 한화그룹은
면접에서 지원자의 다양한 능력이 측정될 수 있도록 학력이나 학점란을
없애는 대신 사회활동란등을 추가하는 방향으로 지원서 양식을 바꿀 방침
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기존의 면접방식가운데서도 그룹이 총체적으로 지향하는
정신에 맞는 사람을 선호하는 회사들도 상당수 있다.

선경그룹의 경우 대표적인 케이스로 SKMS(선경경영관리체계)에 제시되어
있는 "선경인의 자세"를 갖추고 있는 지를 중점적으로 평가해 나갈 계획
이라고 밝혀 그룹 전체의 "정신"을 먼저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선경그룹조차도 채용여부의 최종 결정권을 계열사에
둠으로써 획일적인 인력채용의 단점을 보완하면서도 계열사간 특성의 균형을
유지한다.

신인사혁명으로 인한 채용방식의 변화는 BI로 집약되는 면접방식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필기시험내용도 바꾸고 있다.

한자시험을 추가하는 그룹이 많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럭키금성그룹은 1차전형시 영어 TOEIC테스트와 더불어 한자등이 포함된
직무능력평가를 실시하고 삼성그룹은 시험문제에 한자상식은 물론 기술상식
까지 포함시켜 필기시험을 실시한다.

이런 그룹들의 필기시험방식 변화를 뜯어보면 기초지식을 중시한다는 공통
분모를 찾을 수 있다.

이같은 경향은 럭키금성그룹이 금년채용에서 전공시험을 폐지하는 대신
영어평가의 비중을 높이면서도 직무능력에 대한 평가시험을 추가시킨데서
잘 나타나고 있다.

또한 필기시험 배점을 오히려 강화하는 미원그룹의 올해 신입사원 채용
방식에서도 이같은 응시자의 기초지식을 중시하는 경향이 발견된다.

기업들은 또한 국제화시대에 맞는 자질을 요구하고 있다.

올해들어서는 특히 면접등에서 집요하리만치 다각도로 국제화시대의 감각을
평가하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가 총출동된다.

럭키금성그룹등 대다수 그룹이 기본적으로 영어평가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또 많은 그룹들이 필기시험에서 중화권을 겨냥해 한자시험을 추가하고
있으며 면접에서는 해외연수경험여부를 물을 방침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화그룹의 경우 배낭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지까지 물을 계획이다.

삼성그룹은 제2외국어 선택제를 운영해 30점까지 가점혜택을 줄 계획까지
마련하고 있다.

또한 집단토론을 실시하는 그룹에서는 국제적인 시사문제를 제일 큰
"화두"로 삼게할 것이라고 공개한다.

이같은 신인사제도에 따른 채용방식의 변화는 장기적으로 진화를 거듭할
전망이다.

삼성그룹은 장기플랜으로 석사및 박사인력을 그룹공채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수시로 채용이 가능토록 제도를 바꾸고 인력을 각 계열사가 직접
선발하는 방식으로 전형방식을 바꾸는 것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현대그룹은 경제규모의 변화와 업종전문화 인적교류의 활성화등으로 인해
일시에 연중 필요인력을 뽑지 않고 계열사별로 수시로 인력을 충원하는
방식이 장기적으로 검토될만 하다고 밝혔다.

반면 럭키금성그룹은 특정학과출신뿐만 아니라 업무수행에 필요한 기본
능력 평가가 중요하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장기적인 인력수급계획이
짜여져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계열사의 특성에 맞는 인력채용도 중요하지만 그룹전체의 균형을 꾀할수
있는 인력채용도 무시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신인사제도로 인해 면접에서 BI가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고 국제
감각을 평가하는 것이 올해 그룹의 신입사원 채용의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장기적으로는 계열사의 특성에 맞는 전문능력과 그룹전체의 비전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인력을 찾는데 초점을 맞추어 기업들의 채용방식이 진화할
전망이다.

< 양홍모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