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8일 시작된 올해 국정감사가 어제 막을 내렸다.

이번 국정감사는 과거의 폭로위주에서 정책대안제시쪽으로 초점이
바뀌었고 여.야 가릴것 없이 정부잘못을 질타했다는 점을 들어 예년과
크게 달라졌다는 평가도 있다.

국감을 끝낸 국회는 오늘 이영덕 국무총리의 새해 시정연설을 듣는다.

19일에는 민자당 김종필대표,20일에는 민주당 이기택대표의 연설을 듣고
21일부터는 대정부질문을 벌인다.

이미 국회에 회부돼 있는 새해 예산안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 국회가
해야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런데 이번 국감이 질적으로 달라졌다는 평가는 과연 옳은 것인가.

과거의 국감모습에 비해 나아진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결코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있지 않다.

첫째 국회의원들의 정책질의와 대안제시는 돋보였지만 수감기관에 대한
중복,과다한 자료요구와 사생활관련 자료요구등은 구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의원 스스로는 필요한 자료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 자료를 만들기 위해
다른 업무는 전폐하다시피 하는 수감기관의 사정을 고려함이 없는 자료
요구는 일종의 횡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 정부의 수감자세는 조금도 발전되지 못했다.

소신도 없고 성실하지도 않은 답변에다 우선 책임을 면해보고자 하는
정부의 모습은 국가경쟁력강화에 정부부문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틀리지 않음을 실감나게 해주었다.

감사를 하는 쪽이나 감사를 받는 쪽이 모두 당당해야 한다. 죄인취급을
해서도 안되고 죄인처럼 굽신거려서도 안된다. 호통을 치고 굽신거리는것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잘 잘못이 분명히 가려지고 그걸 거울삼아 정치 경제 사회 국방 외교등
모든 국가일을 발전시키려면 그런 태도로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오늘 이영덕 국무총리 연설을 시작으로 3일에 걸쳐 김종필,이기택
대표의 연설을 듣는 일정도 구태의연하다.

생산성이라든가 효율을 말할때 시간을 아껴 쓴다는 뜻이 많이 함축돼
있다.

하루에 다할수 있는 일정을 3일간씩 늘려놓고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다가 예산안처리 법정시한에 쫓겨 허둥대는
일이나,중요한 안건을 졸속 처리하는 잘못을 되풀이할 이유는 없다.

앞으로 있을 대정부 질문도 조용한 목소리로 정곡을 찔러야 한다.

소리만 요란하고 답변을 듣기보다 질문 그 자체에 뜻을 두는 소위
인기성 발언도 자제되어야 한다.

나라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 올리려면 국회운영의 수준부터 높아져야
한다.

국회의원이 국민의 수준이 높아졌다는걸 안다면 소수의 의견이 존중되는
가운데 다수결원칙이 지켜지는 국회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리가 없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