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은 인간의 성정처럼 선악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농약을 효과적으로 잘 사용하면 농작물의 수확량이 증가하고 품질을
향상시킬수 있으나 그것을 잘못 사용하거나 너무 많이 사용하면
독성때문에 사용자 자신이 직접 해를 입거나 생산되는 농작물에
농약이 그대로 남아 이를 섭취하는 사람의 건강에 커다란 위해를
가져다 준다.

그래서 농약을 "경제적 독약"이라고까지 부르게 되었다.
농작물에 뿌려진 농약은 농작물의 표피에 붙어 있다가 대기중으로
증발하여 희석된다는게 상식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농약의 성질에 따라 농작물 내부로 쉽게 침투하여 분해되거나
축적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그러한 농작물을 먹을 때에는 농약이 체내에 들어와 쌓이면서
중독증세를 일으키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다.

요즈음 한국의 시장에서 유통되는 농작물들을 보면 농약에 오염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다.

주식인 쌀로부터 부식인 야채에 이르기까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길러지는 것이 없으니 말이다.

또 그것들이 생산된 뒤에도 선도를 유지하고 빛깔을 좋게 하려고
맹독성농약을 마구 뿌려대 농약덩어리의 농작물을 양산해 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농산물수입 개방이후 농약이 잔류 허용기준치보다
엄청나게 많이 함유된 외국농작물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지난해에는 맹독성농약이 기준치의 169배나 되는 미국산 밀이 들어와
밀가루음식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준바 있다.

이번에는 국내 유명 식품제조업체들의 라면수프원료로 납품되는
건파에서 맹독성농약이 기준치의 90~180배나 검출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

국민이면 누구나 기호식으로 즐겨 드는 라면의 수프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으니 경천동지할 일일수밖에 없다.

그런데 식품행정 주무당국은 불량식품문제가 논란의 대상이 될때마다
이번처럼 "농약의 휘발성이 강하다"는등의 상식적 호도로 발뺌에만
급급해 왔다.

어째서 당국이 국민의 편에 서서 불량식품의 원료구매과정이나 제조과정을
소상히 명쾌하게 밝힐수 없는 것인지 알수가 없다.

당국이 업자들을 비호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대량살상용 독약"이 든 식품을 만들어 파렴치하게 돈을 챙기는
악덕상혼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당국의 맹성과 강력한 대처가 있어야겠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