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21세기는 실질적으로 개막되었다.

한국은 세계의 모든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어려운 시련에 직면하고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가 가지는 온갖 고뇌를 안고 있다.

제갈공명은 그의 출사표에서 당시의 나라 처지를 "위급존망지추"라 표현
했지만, 나는 이 표현은 오늘의 우리 처지에 그대로 들어 맞는다고 본다.

비록 전국의 시대는 아니라 할지라도 앞으로의 국내외정세는 공명이
직면한 그것에 못지 않은 복잡다단한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중대한 때인데도 불구하고 이 사회에는 이에대한 인식이 아직도
희박하다.

국제화 국제경쟁력이란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지 오래되었으나
이제 벌써 신물이 나 있는것 같다.

21세기를 달리는 "한국호"열차는 어딘가로 달리고는 있으나 방향감각을
잃고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이나라의 국제경쟁력이 떨어졌다고 해도 마이동풍,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6월이후로 실로 종잡을 수 없는 일들이 꼬리를 물며 일어났지만 모든 것이
일과적인 흥분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낙관하고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체념하고 있기 때문인가.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가고 있고 문제는 시간에
따라 증폭하고 있는데 열차는 아직도 어디로 가야 할지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떤 정책의 한두개를 가지고 오늘의 국면을 타개할 수는 없을 것으로
나는 본다.

오늘의 문제는 분명 테크노크라트의 잔꾀를 가지고는 타개할 수 없을
것이다.

근래 무슨 국민운동을 하자는 소리가 있는 것 같다.

그 취지는 십분 이해하지만 나는 이러한 것도 부질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말할 나위도 없이 우리 국민의 도의정신은 세계에서 아주 탁월한 수준에
있는 것은 아니며 국민의 가치관이 혼돈상태에 빠져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풀뿌리 전체가 원천적으로 타락해 있는 것도 아니다.

방향감각을 잃고 있는 열차승객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제갈공명은 위급존망의 간두에 서면서도 국민을 탓하지 않았다.

국민의 도의정신의 타락을 탓할 것이 아니라 정계 관계 업계 종교계
학계의 지도급인사들이 그들의 지위에 상응하는 지도력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21세기를 외치고 있는데도 왜 우리는 21세기로 향하는 궤도에
옳게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한 마디로 말하면 말로는 21세기로 간다고 하지만 행동은
다른 방향으로 가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사회의 허다한 불합리와 부조리를 만들어 낸 그 방법을 가지고
오늘과 다른 사회를 이룩할 수는 없다.

유효한 자유경쟁을 도외시한 개발초기시대의 정책비전을 가지고 21세기가
필요로 하는 유효한 자유경쟁시대를 이룩할 수는 없는 것이다.

냉전시대의 발상으로 앞으로의 평화통일을 달성할 수는 없다.

물가를 안정시키고 국제수지의 균형을 달성한다고 하면서도 경제는 반대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자유화를 한다고 하면서도 가격통제는 강화되고 있다.

중소기업을 육성한다고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의 도산은
늘어가고 있다.

국제경쟁력을 향상시킨다고 하면서도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다.

양극화의 심화는 확실히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21세기향 열차를 본궤도에 진입시키기 위하여는 정계 관계 업계 언론계
학계 종교계등 각계의 지도자들이 다 제 몫을 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정계와 관계의 지도자들일 것이다.

정치권 지도자의 임무는 무엇인가.

나라의 좌표를 설정하고 정책방향을 개발하며 건전한 정견을 가지고 국민을
리드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정치가나 정당도 다 그런 비전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불행히도 일반 국민은 어떤 정당의 이념이 무엇인지, 정치가의
철학이 무엇인지, 국회의원의 투표기록은 무엇인지 거의 모르고 있다.

국민들의 눈에는 정치가들이란 그저 인기에만 관심이 있을 뿐 리합집산을
무상하게 하는 사람들로 비쳐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국민은 그들이 뽑는 그들의 대표에 대해 별 기대도 없다는
듯이 표를 찍고 있다.

이런 정치풍토로는 21세기가 오나마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현재의 위급존망의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표를 많이 받은
분들이 좀 더 확실하게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고 적극적으로 국민을
리드해야 할 것이다.

최근들어 점차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 민간부문의 비대화에 비례하는 공공
부문의 왜소화 비효율화및 무기력화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경제발전을 선도한 관료들의 공이 지나칠 정도로
평가되더니 오늘의 관료는 계속되는 매도에 직면하여 맥을 못추고 있다.

그들의 사명감은 이제 간곳이 없게 되고 우리 경제구조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방향정립에 있어 민자유치니 민간주도니, 민영화니 민자에만 의존
하는 행정편의주의의 버릇을 빼고는 이렇다 할 정책상의 이노베이션도
못하고 있다.

정책상의 이노베이션이 없는 곳에 남는 것은 보신주의와 할거주의일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누가 뭐라 해도 행정이 제대로의 기능을 수행해야 잘 될 수
있는 나라이다.

관청이 오늘날과 같이 체질개선을 못하고 관의 사기가 침하되어서는
아무것도 달성될 것이 없다.

시장기능도 경쟁체제도 그것이 "유효"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관청이
그것을 이룩하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가를 알고 용기와 신념있는 관리가
그것을 추진하여야 한다.

그렇게 되자면 관료체계의 기능과 조직의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는 한 지난 날 중상주의적 정책과정에서 구축된 부조리와 불합리
의 근원은 끝내 시정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 모든 문제의 원인은 작금에 조성된 것이 아니다.

그 대부분은 이미 오래전에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 과거일을 들먹여도 소용은 없다.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앞으로의 방향을 잡을 사람들은 결국 정계와 관계에서 국정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국제적으로 21세기적 상황은 이미 전개되고 있다.

냉정히 그 상황의 내용을 검토하고 오늘 날의 현실인식을 새롭게 하여
출사표를 쓰는 심정으로 분발해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