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에서는 흔히들 극장에 개봉한다는 것을 "극장에 붙인다"고
표현한다.

이 용어를 빌려쓴다면 올 추석 극장가는 한마디로 "누가 누가 많이
붙이냐"는 경쟁의 장이 될 듯하다.

올해부터 실시된 "프린트벌수 제한 폐지"의 결과가 추석을 맞아 그
위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개봉 영화의 프린트 벌수 제한은 92년까지 14개였던 것이 지난해에는
16개로 늘어났다가 금년부터 전면폐지 됐다.

연초 예상됐던 그 파급효과가 추석대목을 맞아 눈에띄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흥행제조기 브루스 윌리스가 "연인"의 제인 마치와 호흡을 맞춘
"컬러 오브 나이트"가 전국 51개극장에서 동시에 붙여지는 것을
비롯,"태백산맥"이 40여개 극장에서 동시 개봉된다.

"컬러 오브 나이트"는 43개극장에서 동시에 개봉된 "쉰들러 리스트"를
제치고 이 부분에서 국내 신기록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또 불후의 액션스타 브루스 리의 아들 브랜던 리의 유작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던 "크로우"와 칸느 영화제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펄프픽션"
도 30여개 가까운 극장에서 동시에 상영될 예정이다.

이같이 올 한가위 극장가가 "동시다발"의 전쟁터가 된데에는 추석
개봉작중 "컬러 오브 나이트"와 "태백산맥"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대작이 없는 것이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원초적 본능"을 연상케하는 에로틱스릴러물인 "컬러 오브 나이트"는
두주연의 지명도와 맞물려 일찌감치 극장주들이 눈독을 들여 왔었다.

최근 용공성시비에 휘말리면서 한동안 매스컴의 초점이 되어 왔던
"태백산맥"역시 한국영화로서는 최고치라 할 수 있는 30여억원의
제작비가 투여된만큼 많은 극장주들이 군침을 흘려 온 것이 당연한
이치.

영화계 일각에서는 이같은 현상이 우리 영화계 흥행 시스템의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영화의 수익성을 따질 때 기존의 개봉관 흥행성적보다는 전체 상영관
숫자와 평균 관람객수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는 "쉰들러리스트"의 경우에 비추어 볼 때 큰 설득력을 가진다.

스티븐스필버그의 이 작품은 서울 개봉관만의 관객동원현황을 고려할
때 "투캅스"와 비슷한 80여만명을 기록했다.

그러나 전국적인 동원실태는 2백여만명에 육박한 것이었다.

우리의 흥행실적도 미국의 박스오피스 통계처럼 개봉일수,상영관수,전체
입장 수익,평균 입장 수익등을 기준으로 작성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서는 극장 업무가 전산화돼야 하며 그렇게 될 때 스크린쿼테제
준수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프린트벌수 폐지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그 의견이 분분하다.

개봉영화를 보기 위해 굳이 시내로 나오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가까운
상영관을 찾는 풍토가 정착되라는 긍정적인 반응이 있는가 하면 중소
영화사들의 극장잡기가 더 악화될 것이란 부정적 견해 역시 만만찮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