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없어지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우리가 수에즈운하를 지나 남양을 돌아오면서 봤잖아요. 그곳에 있는
나라들이 거의 전부 서양 여러나라의 식민지가 되어 있는걸.. 잘못하면
우리 일본도 그들 나라 같은 운명이 될지 모른다 그거지요. 나는 영국이
가장 두렵고, 다음은 러시아에요. 남양의 여러나라를 영국이 거의 다 차지
했고, 러시아는 북쪽으로부터 직접 우리 일본을 먹으려고 남하할 기회를
엿보고 있거든요. 영국과 러시아뿐 아니라, 미국도 프랑스도, 그리고 독일도
동양에 식민지를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어요. 그런 판에 우리가 조선국을
침공할 경우 그걸 구실로 해서 그들이 오히려 우리 일본을 식민지화하러
들지 모른다 그겁니다"

"음-"

"조선국과 전쟁을 벌여놓은 상태에서 서양나라의 공격을 막아낼수가 있을
것 같습니까? 어림도 없어요. 조선국을 먹으려다가 도리어 우리가 먹히는
꼴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 일본은 아직은 남을 먹을 생각을 말고,
먹히지 않는 일에 전념해야 된다 그거지요. 독립을 지켜나가는게 지금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 그겁니다. 독립을 굳건히 수호해 나가며 부국강병을
이룩한 다음에 우리도 식민지를 만들어야지요. 서양나라들만 식민지를
만들고, 우리는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힘이 있으면 다 되는
거지요. 비스마르크의 말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거죠. 그럴 힘이 어디 있나요.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사이고가 조선국에
가는걸 막아야 합니다"

"이미 결판이 났는데, 무슨 수로 막는다는 거요?"

이와쿠라는 답답하다는 그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러나 오쿠보는 어떤 묘안이라도 떠오른듯 자신있는 어조로 대답했다.

"마지막 한판승부를 시도해 보는 거죠"

"어떻게? 비상수단을 쓴다 그거요? 자객이라도 보내서..."

"아닙니다. 사이고를 죽이는 일은 안된다고 내가 전에 말했잖습니까"

"그럼 어떻게?"

"아직 천황폐하의 재가가 나지는 않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막판에 뒤집는
거죠"

"막판에 뒤집는다. 흠-"

이와쿠라의 두눈이 빛났다.

머리회전이 빠르고, 권모술수에 능한 그인지라 대뜸 오쿠보의 속셈이 뭔지
머리에 와 닿는 것이었다.

"천황폐하께서 재가를 내리시지 않도록 하면 된다 그거 아니오. 헛헛허..."

그거 참 묘안이라는 듯이 껄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