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이경 <이이경산부인과 원장>

부모님들은 딸 둘 아들 둘의 4형제를 키우시면서 아들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딸 아들 구별없이 어느 자식이든 공부를 하거나 장래를 발전시켜
나가는데 필요하다면 당신들이 가진 모든 여력을 쏟아 붓는다고 약속했고
지키셨다.

자라는 동안 남녀평등은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고 당연히 정상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겪었던 갈등의 기저이기도 했다. 1백20명중 5명의
여학생으로 의과대학을 졸업하던 해,졸업을 앞두고 나는 그만 엉엉 울어
버렸다. 대학병원에서는 인턴을 해도 여자는 레지던트가 되기 어려우니
아예 대학병원이 아닌 병원에서 인턴을 시작하는 것이 어떠냐는 학과 친구의
충고 때문이었다.

대학병원에서 인턴을 시작한 후 어느 교수님의 "여자 인턴은 남자 인턴과
똑같이 해도 레지던트로 대학병원에 남을수 없다. 월등히 잘 해야만 여자
인턴을 레지던트로 고려한다. 인턴이 된 이상 열심히 해 봐라"하시던 충고는
나의 억울해 하던 마음을 도전욕으로 바꾸어 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마치게 했다.

박사학위를 마친후 잠시의 미국생활을 통해 얻은 값진 보배는 상대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였다. 처음 미국에 가서 햄버거 하나를 사먹으려다 점원의
"이링 히어러 더 고우" 하는 물음에 온갖 정중한 말로 뭐라고 물었는지
네번을 되묻고서야 여기서 먹을 것인지 갖고가서 먹을 것인지(eating here
or to go?)를 묻는 소리라는걸 알아듣고 "내돈 주고 햄버거 하나 사먹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하면서 한숨을 쉬었던 일이 있다. 내가 애써 말해도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하고,상대방 말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자 장애인과
노인들에 대한 이해가 싹트기 시작했다. 얼마나 안타까울까,얼마나
짜증스러울까.

보건행정학 대학원에 등록하여 첫 수업시간에 자기소개를 하는 짧은
기회가 있었다. 생각나는 대로 나는 한국의사이며 미국을 알고 영어를
익히고 보건행정학에 대해 연구하기위해 이 수업을 들으려고 여기 왔다고
영어로 띄엄띄엄 소개를 하고나자 노교수께서 밝은 미소와 함께 "very
good"이라고 하시고는 학생들에게 갑자기 질문을 던지셨다. "여기 앉은
학생들중 자기소개를 한국말로 이렇게 훌륭히 할수있으면 누구든지 한번
해보라"는 것이었다. 한국사람이라고는 나 한명이었던 과목이므로 물론
아무도 없었다. 노교수는 다시한번 나를 쳐다보고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다음 학생의 소개를 들었다. 이일은 오늘날까지 내게 잊혀지지 않는 깊은
교훈을 남겼다. 결점을 부각시키기 보다는 순수하게 접근하여 긍정적인
태도로 받아들이면 모든 인간관계와 세상 경험이 얼마나 풍요로울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었다.

노인의학과 연수와 대학원을 마치고 골다공증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두
연구소의 의학과 강사를 약 2년간 한적이 있다.

노인의학에 대한 나의 강의는 맨 처음 노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
연상으로부터 시작한다. "노인은 늙었다. 주름이 진다. 치아가 상했다. 잘
잊어버린다. 경제력이 감소한다. 작업 능률이나 습득능력이 떨어진다"등등
여러차례의 강의중 단 한번도 긍정적인 수식어를 노인에게 달아주는 젊은
학생(청.장년층)은 없었다. 그러나 당연히 노인들은 이해심이 많고 세상
경험이 많으며 암기력은 조금 떨어지나 종합적인 분석력은 대단하다. 솔직히
한국 노인들의 경제력은 자식들에 대한 무조건적 투자로 상실된 것이다.

학창시절과 수련의및 학원과정을 숨가쁘게 공부와 독서만으로 지내왔다면,
요즘에는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 남녀가 불평등하다고 억울해 하던 이 사회
를 보는 눈도 조금 달라졌다. 현재의 이 사회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여자로서의 장점을 살려 야금야금 여권을 부각시키면 별
무리없이 여남 평등시대도 곧 올것이고,장애인이나 힘없는 노인들에 대해
서도 일방적인 도움보다는 상호협조를 해나가면서 긍정적으로 이해해 나갈
때 언젠가 내게도 닥칠 노후가 활기차고 넉넉할 것이라고 오늘을 살며 미래
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