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농안법 시행보류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하겠다. 현실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긴급유통대책이 결국 미봉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정부 스스로 잘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더구나 시장의 사정은
다급했다.

"중매인들이 생산농가와 소비자를 인질화해 투쟁하는" (최양부 청와대
농수산수석) 순간이어서 우선 불은 끄고보자는 쪽으로 당정간 의견이
모아졌다.

결국 4일 아침부터 당정회의를 거듭했고 고위층의 결심을 얻어내 시행보류
쪽으로 방침이 정해졌다. 시행보류가 법적으로 성립되느냐는 문제와 함께
농정에 대한 깊은 불신은 물론 그대로 남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과연 6개월이면 농안법 시행을 위한 조건이
성숙될 것이냐는 것이라 할수 있다. 법시행을 위해서는 <>농산물의 규격화,
표준화외에도 <>충분한 시장시설의 확보 <>생산자와 소비자의 교섭력 강화
등이 전제돼야하지만 어느것하나 단기간에 이루어내기는 만만치 않다.

농림수산부가 당초 이법의 시행에 반대해왔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이날
의 보류조치가 시간만 연장한 미봉이라는 비판도 그래서 나오고있다.

이날오후 경실련이 "개정 농안법을 재개정하라"는 성명을 내고 중매인들의
주장을 지지한 것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농촌경제연구원 등 연구기관
들도 준비없는 시행에는 "반대"를 분명히 했었다.

이번 농수산물 시장파동은 정부의 농정관리능력에 또하나의 씻을 수 없는
과오도 남겼다. 우루과이라운드를 둘러싸고 두명의 장관이 옷을 벗은지
한달이 안돼 이번에는 농수산물 시장쪽에서 사태가 터져나왔다.

정부가 국회의 개혁입법에 밀려 정작 대책에는 소홀해왔던 점도 컸다.
4일 민자당쪽에서는 하루종일 농림수산부의 무대책을 탓하는 비난성이
터져나왔다.

중매인들이 투쟁의 깃발을 올린지 하루만에 백기를 들고말아 사태를 해결
하는 모양세도 나빴다. 중매인들의 항변이 충분히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집단이기주의에 쉽게 굴복하고 말았다는 선례를 남긴꼴이 됐다.

앞으로 정부가 어떤 사후관리를 해갈지도 주목거리다. 농림수산부는
세무조사, 집단행동 엄금 등 채찍과 당근을 병행한다는 전략이지만 중매인
들의 단체행동을 무력화시킬 현실적인 무기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는 공청회등을 열어 중지를 모으고 여론을 업겠다는 생각이지만
오히려 국회와 중매인들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될 가능성도 높다. 당장
중매인들을 대신할 제도적 장치도 취약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농수산물 유통의 고질적인 악덕이라고 비난받아온 매점매석과
폭리 등 중매인들의 불법행동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정영일 농촌경제연구원장 같은 이들이 우리나라 농산물 시장을 주먹구구식
석기시대라고 부를 만큼 낙후되어 있음도 부인할수 없다. 중매인들이 어떤
명분이든 유통질서를 선진화하자는 개혁입법에 저항했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중매인들에게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인질로 잡아야 했던 사연을 양해받는
일이 남아있다. 그만큼 과감한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