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성황회"는 이제 겨우 출범 3년째를 맞는 모임이다. 서울에 사는
전북부안국민학교 제42회 동창생들이 주축이돼 지난 92년에 결성했다.
40여년간을 서울의 지붕밑에서 살면서도 만나지 못하다가 다시 만난이후
서로 헤어지지 말고 가까이 살자는 뜻에서 우리 부안국민학교 뒷산이름을
따 "성황회"란 이름을 지었다.

92년 봄 어느날,문뜩 고향이 생각나 무작정 전북부안에 내려갔다. 그전에는
명절때나 인사차레로 잠시 다녀왔던 고향, 자세히 돌아보니 40년이란 세월은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는 옛말을 실감케했다. 부안국민학교에서
같이 뛰놀던 친구들을 찾아보려 했지만 도무지 찾을수가 없었다. 그러던중
우연히 한 친구를 만나 동창생들이 대부분 서울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저 혹시 부안국민학교에 다니시지 않았나요" "네 그런데 누구세요" 우리
모임은 이렇게 설레는 전화통화로 시작된 것이다. 곧바로 통화되는 몇몇이
종로의 한 다방에서 모여 서로 주소를 아는 친구들에게 연락하기로해 며칠후
우리는 첫모임을 가질수 있었다.

첫 모임날 놀랍게도 1백여명이나 모였다. 서로 붙잡고 이름을 확인하고
안부를 묻다 웃고 울고, 밤늦도록 이야기 꽃을 피우며 추억을 함께 찾았다.

유난히도 하늘이 푸르던 그해 가을의 어느날, 우리회원들은 모교를 찾았다.
40여년만에 학교운동장에 친구들과 함께 서고보니 감개가 무량했다. 마침
연락을 받고 고향에 사는 친구 수십명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교실을 들어가
옛자리에 앉았다가 운동장을 거닐어보니 우리는 다시 국민학생이 된
느낌이었다. 그날 즉석에서 모교발전을 위한 동창들의 의기가 투합돼 모금을
통해 피아노 1대값을 학교에 기증했다.

그후 우리는 매달 한번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다. "성황회" 모임에는
25명정도가 모인다. 친목모임에 그치지 않기 위해 모교를 돕거나 불우
청소년을 돕는 공익사업을 해보자는 의견을 모아 소리나지 앓게 좋은 일을
해오고 있다. 봄 가을 날씨좋은 때를 택해 가족동반 야유회도 정기적으로
갖고 있다. 서로 사회에서 맡고있는 분야가 다른 만큼 정보도 교환하고
사업구상도 의논한다. 특히 국악계에서 일하고 있는 필자에게는 "성황회"
회원들이 큰힘이 돼주고 있다. 지난 4월1일, 여의도 KBS홀에서 가진 우리
여성국극단의 "안평대군" 공연때는 정말 많은 회원들이 도움을 주었다.
공연 준비 단계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은것은 물론 공연일에도 꽃을 들고
객석을 채워주었다.

"성황회"는 현재 김석길(주)대주산업대표가 회장을 맡아 열심히 이랗고
있다. 박재윤 고등법원수석부장판사, 김길섭 (주)이엠에스부장, 김옥순
여성펜클럽회장등과 필자가 운영위원이다.

우리는 지연과 학연으로 만난 회원들이지만 큰 뜻없이 그져 서로 바라보고
얘기를 나눌때마다 마냥 젊어만 지는 그 기쁨에 매달 만나고 있다. 요즘에는
회원들이 또한번 모교를 내려가자는 의견들이 많아 날짜 잡는데 고충을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