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무대는 50세에서 60세까지의 노년층으로 구성되어 후방의 수비를 맡았고
백호대는 16세와 17세의 소년들로 편성된 번주의 경호부대였으며,유사시에는
전선에 투입할 예비병력이기도 하였다.

각부대는 또 신분의 고하에 따라 사중 기합 족경의 세 종류로 나누어졌는데
사중은 상급무사이고,기합은 중급무사,족경은 하급무사들이었다. 소년부대인
백호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기 아버지가 상급무사이면 사중으로,중급이면
기합,하급이면 족경 이렇게 분류되어 편성되었다. 철저한 신분사회였던 것
이다.

어쨌든 그러니까 고하를 막론하고 무사 신분인 사람은 16세부터 60세까지
모조리 현역으로 편성된 셈이었다.

그밖에 농민이나 상인들의 지원에 의해서 만들어진 감사대가 있었고 무사
집안의 여자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낭자대도 있었다.

말하자면 거번적으로 임전태세를 갖추어 관군의 침공에 대비한 것이었다.

데이지로가 편입한 부대는 백호사중 이번대였다. 대장은 히나다나이키였다.
그러니까 데이지로의 나이를 한살 높여서 자기 부대에 편입시켰던 것이다.

그 이번대가 전장에 투입된 것은 그해 8월 22일이었다.

백호사중 부대에는 일번대와 이번대 두 중대가 있었는데,그날 아침에 출진
명령이 떨어졌다. 전원 무장을 하고서 그날 오정에 쓰루가성의 산노마루
광장으로 모이라는 것이었다.

백호사중 부대의 일번대는 44명이었고 이번대는 37명이었다. 81명의
소년병들은 각자 자기 집에서 가족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들의 부모는
아직 성인이 못된 어리다고 밖에 할수 없는 자식의 출정을 축복해 주었다.
영원한 이별이 될지도 모르는 터이니 속으로는 슬픔이 가슴을 에이기도
했으나 결코 겉으로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웃음을 띠고
기뻐하는 빛을 보였다.

남아로 태어나서 주군을 위해,그리고 나라와 자기 번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을 더없는 영광으로 여기는 것이 무사도였으니 그 가족들도 그런 정신에
철저했던 것이다.

무사의 집안 여자들은 평소에 밤과 콩 호두 솔잎을 준비해 두었다가 남편
이나 아들이 출정을 하게 되면 그것을 불단에 공양한 다음 떠나는 날 아침
밥상에 차려서 내놓았다. 무운과 무사 귀환을 비는 습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