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같은 세상에선 자연스러운 인간 관계나 투명한 물같은 평화로움을
꿈꾸는 것 자체가 하나의 공상이나 몽상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하나 우리 동호인들은 어쩌면 서로 그같은 공통된 바람으로 인해 자리를
같이하게 된것 같다.

한 2년전쯤부터일 것이다. 처음엔 몇몇이 우연하게 미술작품 전시회를
통해 알게 됐다. 전엔 서로 따로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었지만,예술에 대한
공통의 관심과 사고의 취향이 엇비슷한 것임을 느끼면서 차츰 만남의 횟수
도 늘어갔고 모임의 사람도 자연스럽게 늘어갔다.

우리 모임은 이렇다할 명칭도 없을뿐더러 뚜렷한 목적같은 것도 없다.
그만큼 자유스럽고 자연스러운 만남을 가지길 원해서일 것이다.

회원은 10여명이 넘는다고 볼수 있으나 아주 가까이 지내는 동호인으로서
는 정신과 의사인 필자를 비롯 "미술시대" 주간인 유석우시인, 연세대
마광수교수, 서울대미대 김병종교수, 여류 화가인 황주리 김혜란 박선영씨,
그리고 "월간에세이" 주간인 이금랑씨 등이다.

대체로 한달에 한번 정도는 만나는 꼴이다. 서울에서 모이게 되면 으레
유석우 시인의 터전이기도 한 인사동의 몇군데 술집으로 정해져 있다.
만나면 시시콜콜한 생활 얘기부터 예술에 대한 담론에 이르기까지 평소
느껴왔던 생각들을 서로 쏟아내기에 바쁘다. 그런 다음 노래방에 가서
한껏 목청을 돋우는 것으로 끝을 낸다. 간혹 지방에 사는 구면의 인사를
찾아가 흥건히 놀다 오기도 한다. 작년엔 온양에 사는 이동식화백의 집에
초대받은 적이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길가의 신선스런 분위기에 젖어,
밤새도록 술잔을 나눴다.

어떻게 보면 우리 동호인들은 먹고, 노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잠시 가족이나 직장, 그리고 모든 현실적 이해
관계를 떠나 오로지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마음을 함께 나누자는데 모임의
공통된 취향이 깃들여 있다. 그리고 각자 동호인들은 모두 세상의 어떤
대상이나 사람들에게건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는 공통된 반항아적 기질이
있는 사람들이다.

각자는 모두 우리시대에서 가장 큰 몽상을 꿈구는 문화인임을 자부하면서
도, 늘 별 볼일 없는 인간들일 뿐임도 매번 확인하면서 서로를 격려해 주곤
한다. 말하자면 "나그네 인생 동호인"이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