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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의칼] (381) 제2부 대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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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가오카번의 가신집안에 태어난 가와이는 스물일곱살때 에도로 유학을
    가서 당대의 이름난 학자인 사쿠마쇼산의 문하로 들어가 학문을 익혔다.
    사쿠마는 유학자이면서도 난학,즉 서양의 새로운 학문에도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와이는 유학과 병학은 물론 난학에도 접하게 되었다.

    난학에서 그가 특히 감명을 받은 것은 대포와 총기를 제조할 수 있는
    물리학이었고,역사학에서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의 전쟁 등도 흥미를
    크게 자극하였다. 그러나 그는 난학에 심취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순수한
    행동과 실천을 중히 여기는 양명학과 경세의 실학을 값진 학문으로 받아들
    였다.

    이미 그때 서양의 실상을 짐작하게 되고,시대의 흐름을 꿰뚫어본 가와이는
    사쓰마와 조슈의 지사들이 외치는 존황양이라는 구호에 거부감을 느꼈다.
    그가 학문을 익히려고 에도로 나간 해가 바로 미국의 흑선이 우라가의
    앞바다에 나타나서 개국을 요구한 그해였던 것이다. 그뒤로 일본은 개국
    이냐 쇄국이냐로 들끓는 격동의 시대로 접어들었는데,가와이는 "존황"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였으나,"양이"는 멀리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주장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이미 나라의 문을 닫고는 견뎌낼 수
    없는 시대가 되었으니,개국을 해 서양의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개화된
    문명에 접하여 부국강병을 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는 존황양이 운동에는 반대의 입장을 취했다.

    개국 정책을 택한 막부에 반대하고,존황양이 운동을 하는 지사들만이
    우국적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그시대에 당당히 개국의 옳음을
    주장하고,막부의 정책을 두둔한 것은 그의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진취적인
    사고의 결과이기도 했지만 한편 사쓰마와 조슈,즉 서남부지방에 대한
    반감이 작용했다고도 할 수 있었다. 일찍부터 서양과 교역을 하여 다른
    어느 번들보다 앞서서 문명의 이기를 손에 넣어 번영의 길로 들어서고
    있으면서 양이를 부르짖다니 모순일 뿐아니라 그런 운동의 밑바닥에는
    막부를 무너뜨리고 자기네가 일본의 실권을 잡기 위한 정치적 야욕이
    깃들여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서남부지방에 비해서 어느 모로나 발전이
    뒤져있는 동북부지방 사람들의 일반적인 정서,즉 지역감정의 일단이라고도
    할수 있었다.

    그러니까 가와이는 젊은 시절부터 본질적으로는 좌막파에 속하는 사람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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