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가 성공하느냐의 여부는 초기에 나타나고있는 각종 부작용을
해소하는데 있지 않다. 숨기고 싶은 "돈"이 모든 사람이 알수있도록
드러날 것만 같은 심리적 불안감도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져 큰 문제가
안될수 있다. 성패의 관건은 "큰돈"의 행방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명전환기간중에는 국세청통보를 우려, 숨을 죽이고 있는 큰돈이 통보의
무가 없어지고 난뒤 어디로 튀는냐가 경제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실명으로 계속 거래하기가 체질적으로 싫은 거액 예금주들은 전환기간이
끝난뒤 실명으로 전환, 과징금을 무는 한번의 불이익을 당한뒤 돈을
금융기관에서 빼내버릴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

19일 열린 금융통화운영위원회에서도 실명제쇼크를 해소하기위한 단기적인
처방에 급급하기보다는 보다 장기적으로 금융저축의 메리트를 높일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게 중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금융기관돈이 금융기관에
계속해서머물도록 하는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는 금융자금의 이탈을 막기위해 부동산거래때 자금추적조사를
하고 해외자금유출을 근절시키는 "채찍"은 동원했다. 그러나 채찍을
휘두르는 비용이 경제적으로 너무 부담이 된다. 벌써부터 결국
실명전환기간이 지나 국세청이 감시의 눈길을 떼고 난뒤 금융자금이
금융기관밖으로 나가지않고 안에서 선순환이 되기위해서는 채찍에만
의존하지말고"당근"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무부장관을 지낸 이규성 금융통화운영위원회위원은 이날 금통운위에서
금융시장을 육성하고 가려진 돈을 산업자금으로 활용할수 있는 중장기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금융시장육성은 쉽게 말하면 금융저축에
대한 우대조치다. 부동산등 실물자산보다는 금융기관에 돈을 넣어두는게
유리하다는 인식을 심어줄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돈은 이자를 좇는게 기본속성이다. 이익이 나는 곳으로 흐를 수 밖에
없다. 지금같은 금융구조에서 은행에 돈을 맡기는 사람은 그야말로
이자에는 관심이 없고 편리하고 안전한 거래만을 우선시하는 사람일
뿐이다. 물론 단자사나 투신사의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다고 하지만 과거
부동산가격상승폭에 비하면 턱없이 못미친다. 이런 상황에서 실명제가
동원돼 금융자산은 이중으로 열세에 놓이게 됐다.

이를 반전시키거나 비슷하게 유지하는 당근이 없다면 금융자금을
금융기관에 묶어 두고 싶은 희망은 신기루일수 밖에 없다. 특히 큰돈이
그렇다.

금융기관에 잠복하고있는 차가명예금은 정확한 파악은 불가능하다. 지난
89년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추정한 차가명예금은 총유동성의 10%선.
지난 5월말 현재 총유동성은 3백14조원으로 이 비율대로라면 30조원가량이
햇빛을 피하고 싶은 익명성자금 이다. 이들중 상당금액은 세금우대저축을
받기위해 남의 이름을 빌린 것이어서 자금출처도 별로 구리지 않고
절대규모도 크지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거액자금이 도망갈 궁리를
하면서 숨을 죽인채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는게 금융계의 지적이다.
큰손들이 이같은 유혹을 받지않도록 가능한한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명전환이 이제 시작됐으나 전환기간인 2개월은 금방 흐른다.

국세청에서 자금추적조사를 하는데 대한 불안감을 씻어주는 것도 큰
과제다. 국세청은 지난 17일 자금출처조사와 관련, 투기나 증여가 혐의가
뚜렷한 경우로 조사를 국한하고 생산적 중소기업 영세기업 봉급생활자등은
조사하지않겠다고 밝혔지만 불안감은 가시지않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다소 희석되겠지만 정부가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할 몫이다.

실명제의 성패는 실명의 자금이 금융기관을 통해 돌고 돌아 산업자금으로
쓰이고 예금자들에게는 적정한 이윤을 보장하는데 있다. 창구에서
일어나는 불편이 적은것은 아니지만 이는 난생 처음으로 해보는
제도이기에는 어느정도 참고넘어가야 할일이라는데 큰 이견이 없는 듯하다.

문제는 장기대책 이다. 큰돈들이 금융기관에 빠져나가지 않고 산업자금화
할수 있는 물꼬를 터 주는일이다. 금융계에서는 "10월대란"이라는 얘기도
나돌고있다. 실명전환이 끝나는 오는 10월12일 에 임박해서 대규모전환이
있을것 이라거나 12일이 지나고 난뒤 자금이 대거 이탈할것 이라는 소문이
10월 대란으로 비화되고 있다.

정부는 금융자금이 실물자산을 기웃거리지않고 계속해서 머물수 있도록
하는 유인책을 더이상 늦출수게 없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고광철기자>